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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Nov 17. 2019

동경의 동경에 대하여

나의 넷상의 소개글은 ‘로망실현가’. 늘 무언가를 로망하고, 계획(만)을 세운다.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은 작가,평론가로 잘 나가던 (미국)작가가 이혼으로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낯선 (이탈리아의) 투스카니로 가서 우연히 시골집을 사서 고쳐나가면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그러고보니 나는 '집짓기' 에 막연한 동경이 있어서, '바닷가에 집짓기' 같은 책은 무조건 읽어본다. 내 책꽂이에  오랫동안 꽂혀있는 피터메일의 '나의 프로방스'나 필 도란의 '토스카나, 달콤한 내 인생' 같이 낯선 곳에서 당연히 좌충우돌하며 집을 짓는 내용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이렇게 동경하는 일이라면 언젠가 꼭 해볼만도 한데, 그런데 내 인생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인생에서, 집을 짓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나다. 온갖 핑계와 투정과 게으름으로 집 짓는 일이 결코 낭만적이 되지 못할 테니까. 한 마디로, 나는 내가 하기 가장 어려운 일을 동경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일은 정말 이루기 어려워서 인생 마지막까지도 꿈으로 남아있어야한다. 모든 것을 다 아는 것만큼 끔찍한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딘가로 숨고 싶어지기만 하는, 모르는 것이 많았던 치기 어린 시절들은  그래도 하루하루가  바닷가에 새로운 조개를 찾아 떠나는 만큼 새로웠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 알기란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시간이 흘렀기에 아는 것이니. 게다가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아는 인생이란,모든 걸 알아버린 인생이란 얼마나 암울한가. 그러니까 실수하면서 삽질하면서, 그렇게 신성하게 살아야할 것이다.

수산나 타마로의 '마음가는대로' 에는 이런 말이 나온단다. "대개 사십대쯤이 되면 세상에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일어나는 일이란 없다는 걸 깨닫게 되지. 이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야. 많은 사람들이 아주 폐쇄적인 운명론에 빠지게 되거든. 하지만 운명의 실체를 완전히 알기 위해서는 좀 더 세월이 흘러야 한단다."

어떠한 때가 되면 누구나 식물을 들이고 예쁜 커튼으로 부엌을 장식하고 매실청을 담그고 과일잼을 열심히 만들고. 그 다음으론 식물은 자꾸 죽고 커튼은 바래가고.. 누구나 거쳐야하는 일들을 그렇게 거쳐가는 것이 뻔해보이기만 하지만 책에서는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더 흘러야한단다. 조금 희망이 주는 것 같은 말이다. 아직은 동경할 것을 남겨두자.

그렇다고, 무슨 유행처럼 벌써 노년을 동경하지는 말고. 언제부터 우리의 장래희망사항이 노년이 된 걸까?

7월 첫날 저녁, 새로 장을 보는 대신 냉동실의 닭다리살을 녹이고 계란에 간장,미림을 섞어 오야코돈 비슷한 걸 만든다. 내일은 좀더 멀리 걸어야지, 하찮은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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