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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Jan 20. 2020

새해라 좋다, 리셋이어서 좋다

우리집은 연말부터 아이들의 생일이  연달아 있어서 크리스마스부터해서 북새통이다. 굳이 의미를 붙이자면 첫째의 생일로 한 해를 열고, 둘째의 생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셈이다. 그리고 겨울방학이 동시상영 동시 개막되었다. 

어제였던 새해의 큰 하나의 행사(a.k.a 생일)를 무사히, 청소년의 심기를 크게 거스르지 않고 치룬 이후, 이렇게 새해가 5일이나 지나서야 한숨을 돌리고 뭔가를 쓸 여유가 생겼다면 그래요, 특유의 엄살이에요. 

사실 그 청소년은 문을 쾅 닫고 들어간다거나 "엄마가 뭘 안다고 그래!" 하고 소리를 지르는 부류는 전혀 아니지만, 원하는 것을 계속 조른다거나 좀 맘에 안든다치면 은근히  삐진 채 있어서 나름 고충이 있다. 

귀뜸하자면 올해 그 조름 품목은 어항이었다. 그것도 아주 아주 큰. (물을 가득 채우면 100킬로그램이 되는 어항이다.) 어쨌든 늘 떠들썩하게 (키즈카페에서 생일파티를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치루는 둘째에 괜히 비교당해 의기소침하지 않도록 내성적인 아들 청소년의 엄마는 짐짓 신경을 써야 한다. 섭섭치 않게 당일 아침 케익 촛불 서비스 해드리고, 먹고 싶다는 딤섬 먹으러 대구에 하나밖에 없는 딤섬집에 갔다오는 길에 어항을 샀다. (세이프.)  그래도 중학생 아이는 동생이 용돈으로 선물한 두꺼운 노트와 4색볼펜(이면서 샤프도 나온다)이 썩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휴.  

어쨌든, 새해란 참 좋은 제도다. 

단 하루의, 단 1분의, 단 1초의 차이로도 새로움을, 또는 새로울 수 있음을 선언할 수 있다. 나 또한 언제든 할 수 있을 결심을 새해 첫날로 미루느라 새로 산 몰스킨 다이어리를 몇달전에 사 놓고도 뜯지 않았다. 새로운 계획은 새해에 해야 제대로니까. 

새 다이어리에 쓰는 올해의 계획은 역시나 2019년에 똑같이 계획했었으나 이루지 못했던, 다 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복붙아니야? 더욱 놀란 건, 3년전 다이어리를 보니 같은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2019년의 마지막날에는 의레 그랬듯 31일인 둘째의 생일 파티와 연말연초여행을 겸해서, 2019년과 2020년에 걸친 여행을 떠났다. 이번에는 일출을 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대신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강원도가 목적지였다. 서울에선 3시간이 걸리는 속초로 1박여행을 꽤나 자주 갔었는데, 대구에선 가장 가까운 강원도땅이 태백,정선이어서 이번 숙소는 하이원리조트로 잡았다. 태백은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지금 통 눈을 보기가 어려운 곳에 사니, 아이들에게 눈구경을 시켜주고 싶었다.


이번에는 가면서 예천 용궁역,회룡포를 들르고 하이원에서는 하루 날잡아 눈썰매를 타고 마지막날에는 태백 용연동굴과 바람의 언덕, 그리고 낙동강의 발원지라는 황지연못을 보고 왔다. 일출을 보는 대신 처음으로 아이들과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했다. 

[용궁역에는 토끼간빵을 파는데 만주같은 맛으로, 보기보다 아주 맛이 있었다. 대게빵까지 온갖 빵을 다 섭렵해본 결과 지금까지는 토끼간빵이 제일 맛있었다. 하이원에서는 눈구경을 제대로 했다. 길고 긴 곤돌라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 스키바지도 없이 네 식구가 대구에서는 다시 못느껴볼 추위를 즐겼다. 혼자 타는 눈썰매 뿐만 아니라 가족이 모두 탈 수 있는 눈래프팅 보트가 있어서, '눈썰매장의 시간은 거꾸로 아니 느리게 간다' 법칙을  조금이나마 깨주었다. ]


바람의 언덕은 아주 높은, 고랭지 배추가 재배되는 배추밭인데 지금은 겨울이라 황토빛 황량하고 정상에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매봉산 풍력발전단지. 마침 우리가 태백여행을 했던 12월 31일부터 매서운 한파였다. 삼각대도 쓰러질 정도의 바람. 여서 진짜 추웠다. 사진찍는 남편만이 경치에 한껏 신이 났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동굴이라는 용연동굴을 보고 태백순두부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을 하기 위해 황지연못 근처에 차를 대고는 첫째와 편의점에서 초콜렛을 사고, 새해 첫날 꿨던 무지개꿈이 생각나서 편의점 옆 복권가게에서 로또를 샀다. 돈을 내니 아주머니께서 "행운을 빌겠습니다." 한다. 마치 새해 주문이라도 들은 것 같다. 새해 낯선 도시에서 복권을 사고, 행운도 기원받는 경험이라니. 결론적으로 로또는 꽝이었지만(세상에 맞는 숫자가 단 하나도 없었음.무지개꿈.. 개꿈..) 새해에는 기대만 하지 말고 노력한 것에만 기대하자는, 기분좋은 허탈함이 들었다. 

한 해의 마지막에는, 이거저거 다 부질없고 누가 갖다준 저 쌓여있는 배추로 백김치를 만들고 말겠다, 가 새해의 제일 구체적인 계획이었지만, 역시 새해는 새해고 새해의 마법은 여전히 유효한지라, 다이어리를 펼치고 그 어느 해보다 열심히 진지하게,  새해 결심을, 계획을 적는다. 방학 계획과 함께. Happy new year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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