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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Jan 20. 2020

방학이 3주가 되어갈 무렵

1월초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베란다 창을 따라 붙여두었던 앵두전구들을 떼고 트리도 넣었다. 

12월의 어둠이 싫었나보다. 그렇게 반짝이는 것들을  다닥다닥 붙여놓았던 건. 그러나 새해가 되면서는 그저 체념하며 받아들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모두 정리한다. 1월의 밤은 더이상 그렇게 고요하지도 거룩하지도 않고, 그저 추위만 사뭇 냉정하게 남았을 뿐이다. 그렇게 연말의 시끌벅적함을 뒤로 하고 텅빈 거실로 맞이하게 되는 1월의 1이라는 숫자는 왠지 눈밭에 고요히 서 있는 1같은 고독함마저 느껴진다. 1월은 야누스의 달,이라고 지난해를 뒤돌아보는 달이면서 다가올 앞을 바라보는 달이라는데. 

사진을 훑어보니, 얻은 배추와 무 대여섯개를 처치하러 물김치도 하고 깍두기도 담그고(내가 산 게 아니니 더 못버리겠는 심정), 둘째 친구와 첫 파자마파티(둘째가 그냥 친구를 데려와서 통보하는 방식)도 해주고 닥터두리틀도 보러가고 1월은 이렇게 조용히 흘러가고 있다. 방학이 3주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외에는.


올해들어 처음으로 걷기를 나섰다. 방학이니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칼바람이 불었다. 친구들이 이 추위에 걷고 있냐고 놀랜다. 그새 어른이 된 오리가족들을 보며 저수지 둘레를 따라 걷는다. 손이 곱고 볼이 빨개진 그대로 겨울바다나 겨울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여행의 묘미는 그렇게 볼빨간 채로 수행하듯 고행하듯 걷다가 비로소 실내로 들어와 몸이 녹는 맛이니 말이다. 몸이 녹아내리는 그 순간에만 집중하기 위해서라도 추운 계절 추운 지역으로의 여행도 이젠 괜찮겠다. 극기하듯 오로라를 보고, 돌아와 털썩 눕는 그 안도감을 맛보기 위해서 말이다.명확하고도 순수한 안도감.

빌브라이슨이 또 새 책을 낸 걸 보고 그의 옛날 여행기를 찾아서 읽고 있다. 남편이 보면 '지겹다 유럽병' 할 제목이지만. 그의 배는 부럽지 않지만 스무살 완벽한 자유를, 완벽한 세상을 느꼈다던 그 여행은 부럽다.어느 새 내 삶에서 사라져버린 모험은 어디로 간 걸까. 진짜 양이라도 찾아가야 될 것 같은데.

지금 여기서 내가 아는 것이 다도 아닌데, 왜 자꾸 다른 어떤 곳에 뭐가 있는 양 눈을 돌리는지. 신은 도처에 있다고 지드가 말하지 않았나.

나도 멀고 먼 아이슬란드의 기능적인 3층짜리 호텔 어느 방에서 아침부터 책만 읽다가 저녘녘이 되어서야 허기짐을 느끼고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지는 거리로 나와 적당한 곳으로 들어가고 싶..여행기 아니고요..이건 그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아이고, 마 내혼차 절에 드가 한달만 있다 나왔으면 쓰것다" 는 심정의 허세버전이고요..

이유는 많지 않을 것이다,초딩은 계속 방을 어지르고 중딩은 봤던 티비를 계속 보는 방학이 3주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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