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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Apr 05. 2020

결국에 또 한번 알게 되는 것들

부제: 코로나 리스트 2

이렇게 전 세계인과 하나라는 것을 느낀 적이 언제였던가, 이렇게 공감을 할 일이 있었던가, 아미도 아닌 마당에.

유례없는 셧다운, 학교들의 무기한 방학, 휴업.

대구는 더일찍 격리가 시작된지라 저번의 개학연기는 사실 좀 심적으로 더 패닉이었는데 이번엔 예상도 했고 포기도 적당히 했어서인지(그래도 우리 결혼기념일(4월6일)에는 애들이 학교가겠지,한 근거없는 희망은 무엇) 더 덤덤하다.

생일파티, 결혼기념일, 근속휴가 여행 등 코로나때문에 못한 list도 넘쳐나고 세계인들도'my quarantine list'를 만들어 공유하고 있던데, 한적한 도시 변두리에 갇힌 애 둘 있는 아줌마는 쌈박한 아이디어란 머리를 짜내봐도 없고, 나의  list란, 이런 것이다. 

1. 무생채의 달인이 되었다 (항상 균일한 맛의 경지)

2. 손이 빨라졌다 (원래도 빠른 편이었는데 더욱 빨라짐. 손에 모터달았음)

3. 중2와 사이가좋아졌다 - 울 첫째는 그 무섭다는 '중2' 인데, 솔직히 지난 시간 특히 1년간의 아이와 나의 시간은 그냥 '데면데면' 했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부모와 자식 흉내, 그런 정도였던 것 같다. 모든 것이 금지되고 오로지 우리들의 시간만이 허용된 지금에서야, 나는 흉내가 아니라 진짜로 이 역할에 꼭 맞는 배우가 되었다.  배우로 치면 발연기가 아니라 생활연기랄까. 정말 '이해해야하는' 대상으로서의 가족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인정하는,(내버려두는)' 대상인 것이다, 가족은. 게다가 이렇게 24시간 붙어있는 가족이란.-_- (그래요 자기 합리화예요) (이 땅의 중딩 부모들 특히 화이팅)

4. 아이들 방의 배치를 바꾸다 - 꽃놀이를 가고 화분을 사는 고민대신에  아이들 방의 배치를 바꾸어주었다.

첫째의 책상 옆에 있던  하얀 책장에는 쿠키런어드벤처, 나무집, 내일은실험왕 등의 만화책들로 가득한 대신 그의 레고 콜렉션(a.k.a.돈덩어리)들은 설 자리를 잃고 온집안에 흩어져있었는데, 비싸다고 미루던 레고장을 1년여만에 주문해서 책장자리에 놓기 이른 것이다. 대신 당연하게도 그 자리의 하얀 책장은 아직 정리가 안된 잡동사니 오조오억개의 정리안된 둘째의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거실에 표류중.

어제부로 여기 도서관에서도, 드디어, 특별대출서비스가 시작되었다. 1인당 딱 3권만,예약해서 1주일후에 받을 수 있단다. 그 책들을 하나 하나 입력해서 신청하면서, 뭐든 넘쳐났던 지난 일상들, 특히 1인당 10권씩 대출할 수 있던 지난 날들이 있었고, 그것이 불과 몇주전이라는 것이 놀랍고, 그렇게까지 많을 필요가 있었나, 생각이 드는 것이 놀랍다.

이렇게 오래 이렇게 많은 것이 멈췄던 적이 없었기에, 당연하게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당연한 만남, 그리고 당연히 주는 것과 당연히 받는 것들은 정말 당연한 것이었을까. 

대체 어떤 것들이 넘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는 이 어려운 시험에서, 또 한번 생각한다. 다가올 미래에 비해 무엇이 넘치는 것일지도 모를, 얼마나 더 나빠질지 모를, 이 또한 어떤 방향으로 지나갈 지 모를 지금으로선,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이 결국, 오로지 감사뿐이라는, 그 진부한 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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