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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May 13. 2020

그래도 감사하는 법

토요일엔 비가 왔지만 일요일은 개었었다. 갇혀있는 아이들, 특히 중딩 아이를 끄집어내줘야한다는 나 혼자만의 사명감으로 맞이하는 주말이다.

좋아하는 분야가 점점 마니아적(=더쿠)이 되어 가는 그는 아쿠아리움에 (또) 가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월화수목목목 계속 아이들과 붙어있어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했던 나는, 사명감은 있었지만, 지쳤다.(별 한것도 없는거같은데 왜 입가엔 또 물집이 생겼을까.) 게다가 토요일에 출장까지 다녀온 남편이 쉽게 동행해줄, 미안하기도 하고. 안그러면 버스를 굽이굽이 타고 가야한다. 아쿠아리움은 백화점안에 있는데, 남편은 백화점을 싫어한다. 이런 저런 것들이 다 불만스러웠다. 아이들이 일요일 오전에 늘 보는 TV를 보는 동안 혼자 침대에 뒹굴거리며 가지 않을 아이에게 죄책감없는 핑계 또는 남편을 설득할 이유를 생각해내느라 머리를 굴렸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에서 주인공은, 죄책감이란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포장하기 위한 장치래던가.


갑자기, 

아이들이 TV를 보는 동안 혼자 쉴 수 있음이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그런 TV프로그램이 있어서 감사하다,오늘 결방이 아니어서 감사하다.

출장을 갔던 남편이 무사히 돌아와서 감사하다.

아쿠아리움에 갈 수 있는 돈이 있어서 감사하다..

차가운 물을 원할 때 차가운 물을 쓸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 

그게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감사해지는 것이 자꾸 생각이 났다. 몸을 일으켰다.순간 진짜 마음이 내 몸을 움직였다.이렇게 어려운 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법은, 그냥 너무 당연하게 주변에 펼쳐져 있는 일에 감사해보는 것이었다. 만약 그것이 없다면-

남편한테 아이들이 아쿠아리움에 가고 싶어한다하니 의외로  너무 순순히 그러마고 한다. 게다가, 자기만 애들을 데리고 들어간다고 한다.가끔 남편은 귀신같은 촉이 있다.상황을 받아들이자 새로운 길이 나온다.


나는 마니아들덕에 토나오도록 간 아쿠아리움은 패스하고, 그동안 혼자 서점에 갔다. 회사다닐때 근처 교보문고,영풍문고에 늘 점심시간마다,또는 퇴근시간마다 들러서 숨을 고르곤 했다. 서점에 들어서는 순간엔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서 서점의 공기를 마시곤 한다. 짧은 시간동안 몇권의 책을 후룩 읽어본다. 내 뇌는 바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이마신듯 청량해졌다. 


그 잠깐의 외출은 1주일을 살게 할 예정이었다, 개학이 또 연기된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그러나 나를 둘러싼 작은 것들에 연속으로 감사를 떠올려서 행동이 기껍게 바뀐 그 경험은, 딱 하루만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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