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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Jun 08. 2020

빨간 두건처럼

어쩌다 계속 들꽃이 나의 중요한 화제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가꾼 꽃밭도 아닌데.

(코로나 방학동안 참외씨에, 녹두에, 토마토 씨에 매일같이 물을 주어 발아를 시키는 여성(?)스러움은 내가 아니라 우리 막내 특허.)


이 여름 환절기, 가장 아름다운 5월에 신이 아무렇게나 씨앗을 뿌려놓은 정원에는 전혀 짐작도 할 수 없었던 꽃들이 당연하다는 듯 피어있다. 내가 매일 아침 걷는 저수지 둘레길말이다.


아카시아꽃과 수레국화에 이어 찔레꽃 향기가 진동을 하더니, 마가레트꽃이 나무 넘불 너머 피더니, 황금 별빛같은 금계국도 가득 피었다. 


그 마가레트와 금계국을 보니 꽃을 따라간 빨간두건소녀의 마음이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좋은 건 꼭 덤불 너머, 길 옆에만 있는 듯 하다.


아침의 커피와 걷기, 아이(특히 둘째)들에게 잔소리, 점심과 청소와 저녁으로 점철된 나의 하루하루는 그저 미로속을 제자리에서 헤매는 것 같지만, 언젠가 출구에 도착하려나.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과 그 정도로 부지런하지는 않은 게으름 사이에서 헤매다가, 결국은 길을 찾아가려나, 빨간 두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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