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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Jun 08. 2020

인생은 늘 새롭거나, 새로울 예정이거나?

드디어 우리집 중학생도 등교를 했다. 비록 1주일에 2번이지만, 굳이 새벽같이 일어난다기에 예의상(?) 더먼저 일어나느라 나도 너무 졸리지만.(아침밥이란 건 집나서기 직전까지 입속에 우물거리는거 아닌가요? 얘는 왜 출발 1시간전에 먹겠다는건지. 그래놓고 신발 꿰고나서 이어폰, 실내화, 물병 찾음.허당.)


심호흡 겨우 한번 하고,학교 안 간 초등생의 숙제지옥,숙제잔소리지옥으로 바로 휘말려들어갔지만

그래도 정신차려보니 1년의 반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아쉬움과 후회만 있는 것 같은 코로나 시절, 우리 삶은 막 시작했거나 시작을 앞두거나 하는 일들로만 채워져있는 것 같이 보였다. 시작한 일들이 아쉬움이 되고 시작하려다 못한 일이 후회가 되었다. 나조차 진짜 큰맘먹고 시도해보려던 일들이 유야무야되었고.인생은, 정말 두가지 일들로만 이루어진 것일까? 새롭거나, 새로울 예정이거나.

몇달동안 둘째는 학교 숙제인 강낭콩과 먹고난 참외씨와 밥에 넣으려다 언제나 그렇듯 잊혀져 남겨진 껍질깐 녹두에 솜을 깔고 물을 매일 아침 주더니 발아시켜 흙에 옮겨심었다. 이걸 온라인 수업보다, 숙제보다 더 중요시해서 문제지만, 그렇게 작은 씨에서 연두빛 줄기와 잎들이 삐죽 솟아나있는 건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두달전 십여개 뿌린 메리골드 씨앗에서는 2개만이 쑥갓같은 잎이 무성해 언제 꽃을 피울지 궁금해지고. 아, 블로그를 열심히 탐독해 키우고 있는, 비갠 다음날 운동하던 저수지로 불러 데려온 달팽이도 있구나.(이름은 달이와 팽이라고.)

첫째의 어항엔 금붕어 6마리가 살고 있는데 며칠전 한 마리가 부레병에 걸렸는지 죽었다.지난 겨울과 봄, 지금까지 많은 생물이 왔다간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기나긴 칩거생활동안 그전의 가짜 친한 상태에서 자연스러운 친한 상태를 경험했다.

나는, 겉절이를 하고 떼낸 배추겉잎을 버리려다 굳이 데쳐서 우거지로 만든 게 스스로 기특하고 오이소박이랑 열무김치를 담갔고 매일 탈출 아니 걸었고 중고를 비롯해 평소엔 사지 않았을 더 많은 책을 샀지만 다 읽지는 못했다. 생화를 배달시켜봤고 배민의 단골이 되어봤다. 대상포진에 걸렸고 확찐자가 되었었다.

아,그리고  세탁기를 필두로 냉장고를, 거실의 구조를 바꾸면서 식탁까지 새로 샀다. 작정한 건 아니었는데. 

그러고보니 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새로울 것 없는 시간이 이렇게 흘러갔지만, 역설적으로 그 흔적은 더 분명히 남았다.

새롭거나, 새로울 예정이거나 한 일은 아니었지만,묻힐 수 있었던 많은 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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