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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Aug 18. 2020

천진함의 댓가 - 제주(1)

올여름은, 누구라도 그랬겠지만, 사실 큰 계획이 있었다. 첫째가 중학생이니만큼 '한달 해외영어캠프'또는 못해도 아이들 유럽문화탐방이라도 시켜줄거라는, 나름의 결심이 있었다. 애들 여권사진을 다시 찍으러가야지 하던 찰나, 대구는 코로나의 도시가 되어버렸다.

발이 땅위에 늘 5cm는 떠있는 비일상추진자인 나에게, 계획이란 것이 없는 시간이란, 특히 여름휴가계획이 없는 시간이란 너무도 힘들었더랬다. 그러다 여름휴가 2주전,급작스레 제주도를 가기로 결정했다.

처음에 남편이 회사 휴양소로 제주 콘도를 신청한 것이 시작이었다.. 원래 늘 경쟁이 치열해서 당첨확률이 적은데, 글쎄 설마 되겠어, 하고 신청한 것이 된 것이다. 뒷얘기를 들어보니 더 가관이다. 아무도 신청하지 않았던거다-_- 코로나 시국이라..어쨌든 고.


몇번이고 왔지만, 못가본 곳도 많아 일말의 설레임이 아직 남은,제주도가 생각보다 큰 섬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번엔 어떻게 동선을 잡나 고민도 잠시, 핫플같은 곳에도 별관심이 없어 "우리 제주도 가면, 뭐할까?" 하는 질문에 둘째의 "우도 가서, 땅콩아이스크림 먹을거야! 땅콩아이스크림이 정말 맛있대" 라는 말 한마디에 우리의 제주도행의 목적은 정해졌다. (제주도에 두번 가봤지만 기억을 못해 안가본줄 아는 둘째의 저 로망의 출처는 '제주도에서 보물찾기1,2', '쿠키런어드벤처 제주편'.)

우도에 가서 땅콩아이스크림먹기. 이것이 이번 여름 제주행의 가장 단순하되 명확한 목적이었다.늘 자의반타의반 표류하기를 즐기는 어른은 아이의 천진한 한 마디에 정박했다.

그리고, 천진함의 대가는, 전면적인 순수함에 따른 대가는,복잡한 시간과 동선계산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극대화된 만족이다. 여러 대안을 고려하지 않고 최선의 결정을 해야한다는 부담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이토록 홀가분한지 미처 몰랐다.

이 목적이 단순한 여행은 실제로 나를 여행하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롭게 독립시켰고, 이것은 꽤 괜찮은 경험이었다. 어쨌거나 우도에 가서 땅콩아이스크림을 먹는다는 단순하고도 간절한 목표만을 달성시키면 되었으니까.

나도 아이처럼 그렇게 즐기면 되는 거였다.


제주는,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막힌 여름휴가 최성수기의 제주다웠다. 제주에 도착하면 늘 제주시에 고기국수로 유명한 집 중 한군데를 골라 먹는 것으로 여행을 시작했었는데, 반짝 폭염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는 급 차를 돌렸다. 그리고 실감했다, 이 삼다도에 '사람'도 많음을 추가해야함을.

비구름과 태풍 초입에서 제주는 흐리고, 비바람이 불었다.이틀밤을 예약한 첫번째 숙소는 작고 소담한 제주 옛날집이었는데, 고양이 일곱마리가 찾아드는 마당이 있었다. 매캐한 모기향 냄새를 맡으며 마당에 나와 백일홍들과 잔잔한 파도처럼 움직이는 고양이들을 보고 ,구좌 하나로마트에서 포장해온 회와 딱새우회로 저녁을 먹는다. 저렴해서 예약했지만 남편은 어릴 때 살던 주택 생각이 난다며 얼마나 좋아하던지.둘째아이도 한참을 고양이랑 놀아주던, 저녁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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