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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Aug 25. 2020

날씨에 연연해하지 않는 여행-제주(2)

간밤에 비바람에 시골집 창문이 얼마나 덜컹거리던지,비로소 바람이 많다는 삼다도임을 절감할수있던 사흘째 아침, 날씨가 개기를 더는 기다릴 수없고, 어차피 숙소를 체크아웃하는 날이어서 단행한 우도행. 성산항에서 30분마다 있는 배를 타고 우도를 향했다.기회는 찬스라고, 우도는 마침 날씨가 개어 간만에 파란 하늘을 보여주었고, 우리는 좁다란 우도 골목길을 구르듯 달리는 버스를 타고 탄성을 질렀다. 그저 제주도 축소판이려니 생각했던 우도는 기대이상의 섬이었다. 땅콩아이스크림도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길가 매대에서 볶은, 우도땅콩을 사먹어보니 '작은 땅콩이 더 고소하다'가 땅콩계의 정설인지,진짜 고소하고 맛있었다.

흐리고 비바람이 치다가 여우비가 내리는 등 날씨는 여름휴가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이번엔 날씨에 집착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기대와 다를 수 있다'는, 코로나(시국에 적응된) 마인드다. 사실 노는데 아이들은 날씨에 연연하지 않는다. 오직 어른만이 날씨에 집착한다.


날씨도 그렇긴 했지만 이번 여행에선 유난히 작은 사건사고들이 많았다.

1.이번 여행을 맞아 남편의 새로 산 모자가 우도로 가는 배위에서 바람에 휙 날라가서 바닷물에 빠져버렸다.우리는 배 난간에서 하염없이 모자를 바라보았다. 2.마지막날 동문시장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다가는 주차장에서 가벼운 접촉사고도 있었다. 다행히 타이어쪽이어서 별 흔적이 남지 않아 넘어갔지만.

3.그리고 우도 하고수동해변에 내려서 물빛에 반해 짐을 맡기고 튜브를 빌려 노는데 남편과 둘째가 고새 튜브를 놓쳐버렸다. 강한 바람에 튜브는 안전선밖으로 멀리 멀리 떠가버렸다. (바람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치게 된 여행이랄까.)

안전요원이 호루라기를 불어 튜브를 따라가지말라고,해류상 저편 해안선에 걸리더라고 소리쳐주었다. 튜브는 금새 눈에 보이지 않게 떠내려가버렸다. 남편은 튜브를 포기,내가 찾으러간다고하자 물어주면 된다고 말리는데, 찾을 노력은 해봐야지.수영복을 입은채로 땡볕에 뚜벅뚜벅 걸어 튜브가 떠가던 방향을 찾아 해안선을 따라 10여분 걸었을까,(남편은 몰랐겠지만) 그동안 우도의 작은 해변골목길을 걸어가는 기분이 얼마나 즐거웠다고. 우도에서 렌트해서들 다니는 전기차들이 옆으로 지나가고. 튜브가 떠내려가던 방향으로 멀리 보이던, 배들이 정박해있던 포구쪽 들어온 해변에, 놓쳐버린 튜브가 있었다! 나는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 튜브를 옆에 끼고 돌아왔다.

4.또 남원해안도로를 끼고 달리다가는 해변 카페에 들르려고 차를 대고 나오는 순간, 핸드폰을 떨어뜨려 수십번 떨어져도 깨지지 않던 액정이 와사삭 부서졌다. 어차피 약정기간도 한참 지나 바꿀까 싶긴 했지만서도 말이다.

이거 원 왠지 무사히 여행을 마치는 것만으로 큰 일을 해낸 것 같이 될 분위기다.

마지막 이틀을 콘도의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것으로 (수영장 소원을) 마무리하고, 첫날 양가에 황금향을 부쳤던 동문시장에 다시 들러 첫째는 작은 돌하루방 장식을, 둘째는 한라봉 모양의 털뭉치 아니 키링을 사고 처음 제주에 오는양 하루방모양의 초콜렛들도 사고, 공항에서 커피를 마시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비행기를 탔다.제주공항은 본 이래 가장 붐비는 것 같았다.


오랫만의 긴 여행이었다.언제나 그렇듯 피로한 몸을 침대에 뉘이면서 무사한 한숨을 더 크게, 제일 크게 내쉬기 위해 다녀온 것이다. 그 숨을 쉬기 위해 횡경막이 이 순간만을 준비해온것처럼. 이제는 지금 나에게 없는 것이 그 섬이 다 가지고 있다는 얕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비록 가져간 '오래 준비된 대답'은 한 장도 채 읽지 못했고,여행중에 생긴 손가락의 작은 상처가 완전히 아물때쯤엔 제주도를 떠올리는 횟수도 거의 없어지겠지만, 초콜렛을 다 먹어 상자까지 버리고나면 그저 완연한 일상이 되겠지만.

냉장고에 붙어있는 제주도 지형 모양 자석크기만큼일지라도 그 이물감은 내 몸속 어딘가에 기분좋은 뻐근함쯤으로 남아있을 것이다.그리고 제주도의 바람을 맞고 온 나는, 고도 7000미터를 통과해온 나는, 이전의 나와는 다르기때문에 또다른 새로운 선택을 할 준비가 되었다. 나의 여행기는 늘 이렇게 끝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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