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망버드 Oct 05. 2020

인생은 복습뿐

아무런 일정이 없는 연휴 5일이 지났다.


이렇게 긴, 아무런 스케줄이 없는 휴일이 있었나. 기어이 1박이라도 여행을 가곤 했었는데 말이다.
긴 길앞에 지도없이 서있는 것처럼 조금은 막막했던 기분은, '노는게 젤 좋은' 나이는 아니라서 그런가.


집콕의 시간속에서 또 이사를 앞두고, 당근마켓앱을 다시 깔았다. 엊그제는 아이들 책을 주로 팔았는데, 이제는 내 책들을 내놓으려고 책을 솎는다. 몇번의 이사동안 중고서점엔 미처 가지 못하고 버리지도 못한 책들이, 햇빛에 바랜 책등과 표지를 한 책들이 다시 내 눈앞에 현현한다.

아.. 이 책을 내가 읽었었다고? 표지만 익숙한데.


인생에 대해선 손톱만큼밖에 몰랐으면서, 아직  올라온 고도가 낮아 지나온 시간들이 굽이굽이 모퉁이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았으면서, 신현림, 노희경, 그때는 이런 작가의 글을 잘도 읽어댔다.


과거에 대해 기억만 있었지 추억은 아니었으면서, 스무살의 치기를 곱씹는 작가따라 나도 뭘 아는 듯 주억거렸다. 현미를 씹듯 천천히, 시간을 흘려보내던 때였다.

그런 이후엔 시간의 물살이 너무 세서, 나는 그저 빠지지 않기만을 위해서 팔다리를 열심히 허우적댔다. 두 아이를 키우며 회사를 다니던. 불과 몇년전인데, 정말 옛날옛적의 일같다.


급하게 정리하려했으면 그냥 버렸을 그 책들을 그날밤 노란 등을 켜놓고, 맥주 한캔을 안주삼아 읽는다. 책을 다시 읽어보니,정말 처음 읽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12년전에 나온 책이다.('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일부는 너무 실감나서 밥과 모래를 같이 씹는듯 서걱거린다. 너무 서걱거려서, 물을 찾느라 잠시 덮었다가 다시 펼친다.


사실 이런 책은 지금 읽었어야 했다. 늘 마치 인생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버린 줄 알았지만, 늘 내가 산 그만큼밖에 모른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아무리 해도 나는 10년후로 미리 가 있을 수는 없다. 다시 한번 생각하지만, 인생은 예습이 안 된다. 제아무리 예습해봤자다. 그러니 너무 선행은 하지 말자. 인생은 복습뿐이다.



#지금사랑하지않는자모두유죄#만나라사랑할시간이없다

작가의 이전글 날씨에 연연해하지 않는 여행-제주(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