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일정이 없는 연휴 5일이 지났다.
이렇게 긴데, 아무런 스케줄이 없는 휴일이 있었나. 기어이 1박이라도 여행을 가곤 했었는데 말이다.
긴 길앞에 지도없이 서있는 것처럼 조금은 막막했던 기분은, '노는게 젤 좋은' 나이는 아니라서 그런가.
집콕의 시간속에서 또 이사를 앞두고, 당근마켓앱을 다시 깔았다. 엊그제는 아이들 책을 주로 팔았는데, 이제는 내 책들을 내놓으려고 책을 솎는다. 몇번의 이사동안 중고서점엔 미처 가지 못하고 버리지도 못한 책들이, 햇빛에 바랜 책등과 표지를 한 책들이 다시 내 눈앞에 현현한다.
아.. 이 책을 내가 읽었었다고? 표지만 익숙한데.
인생에 대해선 손톱만큼밖에 몰랐으면서, 아직 올라온 고도가 낮아 지나온 시간들이 굽이굽이 모퉁이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았으면서, 신현림, 노희경, 그때는 이런 작가의 글을 잘도 읽어댔다.
과거에 대해 기억만 있었지 추억은 아니었으면서, 스무살의 치기를 곱씹는 작가따라 나도 뭘 아는 듯 주억거렸다. 현미를 씹듯 천천히, 시간을 흘려보내던 때였다.
그런 이후엔 시간의 물살이 너무 세서, 나는 그저 빠지지 않기만을 위해서 팔다리를 열심히 허우적댔다. 두 아이를 키우며 회사를 다니던. 불과 몇년전인데, 정말 옛날옛적의 일같다.
급하게 정리하려했으면 그냥 버렸을 그 책들을 그날밤 노란 등을 켜놓고, 맥주 한캔을 안주삼아 읽는다. 책을 다시 읽어보니,정말 처음 읽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12년전에 나온 책이다.('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일부는 너무 실감나서 밥과 모래를 같이 씹는듯 서걱거린다. 너무 서걱거려서, 물을 찾느라 잠시 덮었다가 다시 펼친다.
사실 이런 책은 지금 읽었어야 했다. 늘 마치 인생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버린 줄 알았지만, 늘 내가 산 그만큼밖에 모른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아무리 해도 나는 10년후로 미리 가 있을 수는 없다. 다시 한번 생각하지만, 인생은 예습이 안 된다. 제아무리 예습해봤자다. 그러니 너무 선행은 하지 말자. 인생은 복습뿐이다.
#지금사랑하지않는자모두유죄#만나라사랑할시간이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