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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Oct 15. 2020

프랑스에서 시작해서 미국으로 끝나기

남편의, 넷플릭스 폐인에 대한 경고(우려,걱정)를 뒤로 하고 나는 넷플릭스의 상자를 열고 말았다. 역시나 '대세'라는 것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는 끝까지 대세를 역행하는 고고한 연어와 같은 뱃심이 없음에도 버티어보았던 일개 송사리였을뿐이었고 늦은 결제는 배송만 늦출뿐, 이란 말처럼 늦은 가입은 늦은 시청일뿐이었다.

요즘 보고 있는  '에밀리인파리'. 사실 팔로우하고 있었던 주연배우 릴리 콜린스가 갑자기 포스터를 올려 진작 알게 된 넷플릭스 드라마다. 가볍게 와인 한잔하며 보기 좋은.

일찌기 영화나 책에서 미국인은 그 오버스러움과 직설, 얕은 문화와 워크홀릭 근성에서 영국, 프랑스로 대변되는 유럽에 은근한 비웃음거리가 되어 왔다. 그런 미국인으로 대표되는 에밀리가 동경하던 프랑스, 그것도 파리에 갑자기 파견되어 가면서 겪는 타국에서의 좌충우돌들이 인스타그램을 곁들여 팬시하게 펼쳐진다.(경고:15세 관람가이나 자녀와 같이 보면 안됨.) 물론 미국이 제작한 만큼, 이번에는 프랑스를 물고 늘어지는 것 같긴 하다.  프랑스인은 게으름 그 자체를 사랑한다는 둥, 플라뇌르를 찬양한다는 등.


오늘 아침 머릿속으로 할 일들을 계속 생각만 하면서 이불속에서 뒹굴 때, 나는 어제밤 에밀리인파리에서 본 '프랑스인들은 게으름 그 자체를 사랑한다' 라는 대사와 내 게으름을 타파하고 싶어서 읽은  'HABIT(해빗:습관)'이란 책의 '습관은 의지가 아니라 상황이니 습관을 통해 나를 바꾸자'라는 상충되는 두 개의 문장과 씨름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해빗의 저자는 아니나다를까 미국인이다.)

나라는 인간은 늘 이렇게 게으름과 의지, 파리와 뉴욕, 프랑스와 미국 사이를 오가고 있었던 것일까. '이 반복되는 게으름을 이기고 바로 일어나서 뭔가를 해야해. 몇개의 통화를 하고, 운동을 나가고, 물걸레를 빨아 청소를 해야해', 와 '오늘만큼은 그런 '해야할 일'에 대해 강박감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하루를 즐기고 싶어'라는.

어쩌면 영원히 프랑스와 미국 사이에 있어야할 것이고, 또 어쩌면 현재는 근본적으로는 프랑스에 있지만 미국을 지향해가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게으름을 사랑하라고, 자연을 느끼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언제까지나 책을 읽고 노래를 흥얼거리라고 시키지만, 중학생 정도가 되면 이젠 그럴 게으를 틈이 조금도 없다고 닥달한다.


사실 기간이 다 되어가는 숙박권이 있어서  이번 주말에 지리산 쪽으로 여행을 가려고 예약을 했었다. 근본적으로 프랑스에 가까운 나와, 그런 나를 닮아가는 둘째는 여행에 엄청 기대를 하고 있었다. 딸은 일주일전부터 자신의 곰인형 무늬 캐리어에 가져갈 짐들을 챙기는 유형. (중딩은 현재 따라가만 주면 고마운 유형이지만.)

그러다가, 첫째의 수학학원에서 온 주말 보강 문자를 보고는 퍼뜩  '아. 나 (학원 보내는) 중학생 엄마지.다음 주에 중간고사보는 중학생 엄마지.'  깨달았다.  그런 내 모습이 철없게도 신기해서 남편에게 '아 다음주가 중딩 시험인데 우리는 시험 전에 여행을 잡았네.하하' 했는데 남편이 '그럼 숙소를 취소해야지' 한다.

아닛? 나 .. 나난.......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시험은 시험이고 여행은 여행인거지... 난 학원보강 있어서 어디 못가고 그런 부모는 되고 싶지 않았다구. (무슨 자신감으로? 아들 공부 방해하는 사람 바로 나야나..?)


결국 여행은 취소되었고, 나는 그런 중학생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프랑스에서 나오지 못해 헤매는. 누가 미국행 티켓좀 끊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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