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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망버드 Nov 23. 2020

이사를 위한 변명

내가 신의 정원이라고 이름붙인. 저수지 둘레길에는 신이 뿌려놓은 꽃들이 늘 피고 졌다.

꽃들은 저마다 다른 모양과 색으로 피고, 홀로 또는 무리지어 피고, 피어가는 순서도 방법도 달랐다. 그리고 어떤 꽃은 크고 빨리 피었다 빨리 지지만 어떤 꽃은 늦게 피고 오래 핀다. 나의 정원을 가진 것도 아니면서 같은 풍경에서 피고 지는 꽃을 보아오니 또 깨달은 것이 식물의 생애에서 꽃은 언젠가 한번은 피는구나,였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꽃은 자신의 시간표대로 자신의 방법대로만 피었다. 그럴 때마다 누구든 이 꽃처럼 한번은 피겠구나, 시기가 다를 뿐이구나,했다.

그런데 베란다에 내어놓은 빈 흙 화분에 어디선가 날아온 메리골드 씨앗이 아차,생각났다는듯이 줄기를 내고 잎을 내고 크고 있었다.그러나 추운 공기에 금새 잎의 끝이 갈색이 되더니 성장이 멈추고 말았다.

그러니 꽃은,너무 늦어서도 안된다.


코로나 시대에, 이사를 했다. 누가 올인테리어를 한 집에서 몇년만 살고 이사하게 됐다더니,나도 처음 집을 마련했었는데 천년만년 못살고 이사를 했다.

원래 힘든 것이지만,몇번의 이사를 통틀어 가장 힘든 이사가 아닌가싶었다. 몇년사이 나는, 훅 늙었나보다.

내다버리고, 정리하고, 아이들을 전학시키고,아이들 피아노와 영어학원을 다시 알아보고, 교복을 사러 나다녔다.

저번집에서는 이사 이후 거의 정리를 하지 않았다. 수납공간이 많은것이 그 집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가득 쌓아두고 문을 닫아버리면 되어서, 버릴 것도 쌓아지고, 쟁여두는 것도 쉬웠던 것이다. 수납공간이 적어져서 더 나쁜가하니, 그건 또 아닌것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확실히 알게 되고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좋다.

학원을 보내지 않겠다던, 이른바 '낭만주의자','이상주의자'는 수성구 변두리로 이사를 하게 되고 영어학원을 보내려고 연락하고,중2인데 한번도 영어학원에 보내지 않았다는 말에 당혹감서린 반응들을 듣고 들어가기전 테스트를 1시간 보는 것에도 기함했다가,그것에 끝나지 않고 학원에 (또!) 까인줄 알고 그날 저녁 한캔을 별렀던 현실적 낭만주의자('낭만적 현실주의자'라는 닉네임을 쓰는 절친에 바치는 오마주)가 되었다. 결국 그 학원에 가게 되었지만. 시키면서 안시키는 척 하는 엄마가 아니라 안시켰는데 시킨만큼 하기를 바라는, 더 나쁜 사람이었던건가-_-

어쩌면 내 신념이란 종이조각일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12월이 되어야 꺼내겠다는 하찮은 신념만큼.

정수기니 뭐니 수돗물을  먹는다는 건 영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다 이제 갑자기 정수기가 달린 냉장고가 우리집에 있고, 빨래는 자연적으로 말리는거지,했었지만 누구보다 건조기에 의존하고 있다. 앱으로 시켜먹는 것에 대해 탐탁히 않아했던 것도 불과 몇달전일이다.

유럽 여행을 가서 수학문제집을 풀렸다던 어느 엄마의 여행기를 읽고 앞뒤가 안맞다고 생각한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누가 그러더라, 결심이라는 게 손바닥 뒤집듯 뒤집히더라고. 이쯤되면 신념인지 아집이었는지 헷갈린다.


이사 오기 전 매일 아침 걷던 꽃이 피고 지던 똑같던 그 저수지둘레길을 생각한다. 꽃이, 너무 늦게 피면 안되겠지. 너무 늦으면 안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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