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들은 말하는 단어가 많아지고, 엄마가 하는 말을 자기 나름대로 따라 한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언어를 학습하는 과정을 보는 게 또 쏠쏠한 재미다. 아들이라 그런지 말은 여아보다 느리긴 하다. 울 아이가 요즘 많이 말하는 단어는 어설픈 발음으로 <내꺼야>. 사실 키즈카페에 가서 자기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자꾸 뺏기는 모습을 보고 가르친 건데 친구한텐 말도 못 하고 집에서만 주구장창 쓰고 있다. 자기 것도 아닌데 <내꺼야>하고 우기면 나는 아들에게 "이건 **꺼 아니지? 이건 형아 꺼야." 이렇게 말했고, 남편은 "욕심쟁이!" 이렇게 말하며 안된다고 했다. 자기가 갖고 싶은 게 생기면 불쌍한 목소리로 내 거야, 내꺼야 말하는 게 점점 많아지자 마음이 짠해서 "엄마가 사줄게, 엄마가 다 사줄게"라고 말하며 달래기도 했다. 어느 날 밖에서만 노는 에너지 넘치는 아들이 누나들이 축구하는 모습을 봤다. 축구를 좋아해서 공만 보면 몸이 먼저 반응하는 아들은 누나들의 공을 보며 또 불쌍한 목소리로 <내꺼야> <내꺼야> 말하기 시작했다. 그래, 너도 축구하고 싶겠지. "나도 공놀이 하고 싶어"라는 문장을 말 못 하니 자기가 말할 수 있는 단어 중에 고른 게 <내꺼야>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저건 **꺼 아니지? 누나꺼지?"라는 말을 하지 않고 "우리 **도 축구하고 싶구나!"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내 말을 알아듣는가 싶은지도 모르겠는 아이가 갑자기 "응" 하더니 더 이상 조르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나는 게 아닌가. 마음을 공감받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말도 못 하는 그 조그마한 애가 말이다. 사실 <공감>과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처음 각광받을 때는(감정코칭과 아이의 자존감이라는 책에서부터 이슈화된 듯) 신선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제는 뭐만 하면 그 단어들을 들먹이니 조금은 진부하고 피로해진 단어들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 단어들이 중요하다는 건 매 순간 느낀다. 강연에 가면 어떤 부모님들이 이런 질문도 하신다. "선생님, 공감해주래서 그랬구나, 공감했더니 더 기어올라요. 도대체 어디까지 공감해줘야 하나요?" 부모나 교사는 권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권위는 어른인 내가 주는 게 아니라 아이가 부여한 것이어야 한다. 내가 무섭게 한다고 또는 체벌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받아주기만 해도 권위는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감정은 공감해주되 안 되는 행동은 단호하게 말해주라고 하는 것 같다. 또 너무 사소한 것 까지 제지하면 진짜 안 되는 것에서 안된다고 해도 그 말이 먹혀들어가지 않는다. 공감의 힘은 크다. 내가 의지하고 사랑하고 있는 상대가 해주는 공감의 힘은 더 크다. 아이에게 충분히 공감해주되, 진짜 안 되는 행동은 알려주는 따뜻하면서도 믿을만한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