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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time Reviewer Jun 22. 2023

닫힌 변기 뚜껑 리뷰

연구실에 있다가 똥이 마려웠다.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갔다. 변기 칸의 문을 열었는데 변기 뚜껑이 닫혀있었다.


찰나의 순간 생각했다. 다른 칸을 갈까 아니면 그냥 이 칸에서 똥을 쌀까.


어차피 다른 칸은 많다. 굳이 이 칸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닫힌 변기 뚜껑 앞에서 한참 고민했고, 그 끝에 나는 이 칸에서 똥을 싸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변기 뚜껑을 열었다. 변기에는 황토색 설사 똥이 사방팔방 튀어 있었다.


자리에 돌아와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해보았다. 닫힌 뚜껑을 보고 다른 칸에 갈 수 있었는데 왜 나는 굳이 그 칸에서 뚜껑을 열고 그 안을 보았을까?




퇴근 후 친구송이들과 술 약속이 있어 술집에 갔다.


오래된 친구송이들과의 만남은 실없는 농담과 내용 없는 만담으로 가득하다. 건설적인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백번은 들었을 옛날이야기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실 뿐이다.


서로의 주량을 너무나도 잘 알아 술도 꽤 마신다. 그렇게 마시니까 오줌이 마려웠다. 혼란을 틈타 화장실에 간다 말하고 일어났다.


화장실에서 변기를 보니 점심에 있던 일이 생각났다.


뚜껑이 닫힌 변기 안에는 높은 확률로 똥이 있다. 그리고 나는 충분히 다른 칸을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변기 뚜껑을 열었고, 그러한 선택의 대가로 오색빛깔의 설사 똥을 봤다.


하지만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던가. 나는 낮의 일을 잊어버린 채, 또 오랜 친구들과의 약속이라는 변기 뚜껑을 열어버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실없는 농담과 재귀적인 옛날이야기와 의미 없는 만담이라는 똥이 있었다.


왜 나는 그곳에 똥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변기 뚜껑을 여는 걸까.


똥 얘기만 나오면 까르르 웃는 초등학생 애송이들처럼, 나 역시 사실은 똥을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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