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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time Reviewer Jul 05. 2023

국립중앙박물관 리뷰

하기스 매직팬티 착용 필수!

한국사 공부를 제대로 하기 전인 중학생 어중이떠중이 시절, 체험 학습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던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박물관 견학’보다 ‘수업을 안 하고 어딘가로 간다’에 포커스가 더 맞춰져 있었던 것 같다. ‘경천사 십층석탑’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들어온 기념은 난 모르겠고, 넓은 박물관 마당에서 개폐급처럼 신발 멀리 던지기를 하거나 어린아이처럼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하며 신나게 뛰어다니다가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 10년이 흘러, 인스타 맛집 용산공원 미군기지에 갔다가 그 옆에 있는 국립 중앙 박물관에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방문했다.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전시는 당일 예매가 종료되어 가지 못한 김에 무료로 개방되어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게 되었다.


그렇게 가볍게 입장할 때까지만 해도 내가 도합 15번의 분출, 2번의 혼절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순서대로 잘 구획되어 있었다. 그리고 첫걸음을 떼는 순간 세계 전도와 함께 일목 정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일본 중국 대한민국 세계 고고학의 연표를 보며 미세하게 요실금 했다.


이내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교과서에서만 봤었던 구석기시대의 ‘주먹 도끼’가 웅장하게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비로소 1차 분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싸버린 나를 부끄러워할 틈도 없이 연타석으로 사회과부도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던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 토기’를 보고 시원하게 2차 분출을, 동선을 따라 청동기/초기 철기 유물들을 지나가다가 ‘요령식 동검’, ‘농경문 청동기’를 보고 3차 분출을, 삼국시대 고구려의 청룡주작백호현무를 위엄 있게 담은 ‘사신도’를 보고 4차 분출, 신선들이 산다는 박산 굽이굽이마다 상상 속 동물들과 사람의 모습으로 장식된 ‘백제 금동대향로’를 보고 5차 분출,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금관’과 ‘허리띠’ 앞에서 6차, 북한산에 있던 것을 보존을 위해 가져다 놓았다는 ‘진흥왕 순수비’ 실물에 7차로 연타석 폭풍 분출을 해버렸다.


이후  통일신라시대 거대한 ‘철불’ 앞에서 8차, 고려시대 ‘고려청자’와 ‘팔만대장경 합본’ 앞에서 9차로 싸버린 이후 화장실에 급히 들러 하기스 매직팬티 아이템을 착용하였으며, 조선시대 입구에 붙어있는 태조 어진에 10차, 조선시대 초기 정도전의 ‘삼봉집’에 11차, 주관식 단골 출제 문제였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천상열차분야지도’, 장영실의 ‘측우기’와 ‘앙부일구’ 실물, ‘경국대전’과 ‘용비어천가’의 실물 6 연속 콤보에 12차 분출을 하며 뽀송하던 매직 팬티를 축축하게 적셨다.


이어지는 조선 중 후기 구획에서 박지원의 ‘열하일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허준의 ‘동의보감’ 실물과 ‘상평통보’, 암행어사 ‘마패’, ‘대동전’과 ‘당백전’ 실물을 보고 13번째로 쌌지만 또 쌌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면서 2층에 도착하자마자 ‘사유의 방’에 따로 전시되어 있는, 왼쪽 무릎 위에 오른쪽 다리를 얹으시고 오른쪽 손가락을 살짝 뺨에 댄 채 깊은 생각에 잠기신 두 분의 ‘반가사유상’의 고귀한 자태에 14차 폭풍 분출을 하며 정신이 혼미해져 몸을 가눌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후 서화관에서 볼 수 있는 초대형 ‘괘불’과 추사 김정희의 ‘손글씨’, 정선의 ‘수묵화’, 김홍도의 ‘단원 풍속도첩’을 본 이후에는 마지막 15차 폭풍 분출과 함께 그로기 상태에 빠져 3층의 세계문화관과 조각공예관은 가보지도 못하고 관람 중도 하차를 할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기념품 뽐뿌 폭주 상태를 진정시키며 박물관을 출구를 나설 때쯤엔 너무나도 많이 흘려버린 수분 때문에 약간의 탈수 증상을 겪었으며, 입구 앞 투썸 플레이스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며 비로소 수분을 충전할 수 있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마따라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아는 만큼 싸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연히 입장 시간이 겹쳐 모든 여정을 함께 했던, 단체 관람이기에 안내자분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면서도 정작 유물들에는 관심이 없고 실없는 농담만 던지던, 중학생 애송이들을 보며 이 뽀송이들도 수능을 위해 또는 한능검 1급을 위해 한국사 공부를 하고 10년 후에 다시 박물관을 방문할 때는 나처럼 축축하게 지려버릴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유난히도 더운 여름이다.

몸속에 쌓인 노폐물을 시원하게 배출하기 위해 사우나에 가기보다는 무료로 노폐물 제거가 가능한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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