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나는 참 착하고 엄마는 참 악독하다고 생각했다.
늘 나에게 무언가 강요하고 나를 평가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제 회사 팀원들과 서로의 MBTI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나의 MBTI를 차분히 들여다보니 난 꽤나 괴팍한 사람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속 얘기를 남들에게 잘하지 않고 잘 참고 알아서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야 내 속을 털어놓는 편이다. 상대방이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일 거 같으면 다가서지만 먼저 누군가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상대방이 나에게 먼저 진심으로 대하면 나도 마음을 열지만 꽤 오랫동안 경계를 풀지 않는다.
나와 이야기하는 사람이 어디 가든 누구에게든 나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면 그때부턴 마음을 열고 다가간다. 매우 소탈하고 유쾌하고 발랄한 사람으로 느끼다 못해 얘가 나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라고 느낄 정도로 애정이 뿜뿜 넘치는 사람이 된다.
그런 걸 보면 감정 표현을 잘하고 솔직한 엄마에게 난 참 대하기 어려운 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와는 많이 다른 엄마에게 나는 속 얘기를 잘하지 않았다. 나를 이해해주기보다는 자신만의 관점에서 강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엄마의 소통 방식은 나에게 큰 부담을 주었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으니 나도 마음을 닫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해도 본인의 생각이 최고라는 식으로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평생 누군가의 딸로서 누가 되지 않아야지라는 강한 부담감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자식이 부모의 자랑거리는 못 되더라도 누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늘 옥죄는 사슬 중의 하나였다. 워낙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살아와서 작은 선택의 순간뿐만 아니라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도 나보다는 부모의 입장에서 선택한 적이 수도 없이 많았던 거 같다.
그러다 보니 내가 정말 느끼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헷갈리는 지경이 되었고 부모가 원하는 삶은 20살까지로 마무리한 거 같다. 대학교 3학년 때부터는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하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가장 큰 적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부모가 걸어갔던 길을 걸으라는 강한 푸시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길을 가기 위해서 독립선언을 하였고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 길은 고독한 길이었고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는 길이라서 공감을 얻기도 힘들었다.
익숙함과의 결별은 참 어렵고 고통스러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입혀진 갑옷과 같은 나를 보호하고 지켜주지만 무거운 겉옷을 벗고 나니 나는 가난하고 외로웠지만 자유로웠다. 홀가분하면서 외로웠다.
외로움과의 치열한 싸움과 스스로를 세우기 위한 노력이 함께 이루어졌다. 이대로 나를 두지 말자.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하여 나를 채찍질했다. 부모에게서 완벽한 독립을 이루어내기 위한 나의 노력은 결국 성과를 이루었다.
혼자 뒹굴거리며 공상하고 좋게 좋게 지내고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던 나에게 부모는 참 많은 것을 요구하는 존재였다. 어쩌면 내가 가능성을 보였으니 더 많은 것을 요구한 것인지도 모른다.
큰 아이의 학습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 우리 부부가 아이가 조금 더 노력했으면 하는 마음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아이는 이미 큰 부담을 느낄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 부모를 이해하게 되고 내가 느꼈던 부담감을 주지 않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한다. 아이 스스로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부모가 주는 부담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어제 오랜만에 회사 상담사와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나 스스로 난 잘하고 있어. 나니까 이만큼 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 회사 상담사를 만나면 다시금 나를 돌아보게 하는 직언을 듣게 된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나도 부모의 잣대로 평가되는 게 싫었으면서도 나도 나만의 잣대로 타인을 본다.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최대한 나의 기준을 내려놓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수용하기 위한 노력은 상담사의 뼈 때리는 말로 다시 시작된다. 앗! 나의 색안경을 내려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살다 보니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서 결혼했고 자신감과 자존감을 회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생각과 호불호가 확고하지만 감성이 풍부하고 여린 둘째를 보다 보면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게 된다. 성장하면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참 힘이 드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이 녀석도 얼마나 인정받고 싶고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싶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이 녀석의 엄마인데 최소한 나는 이 녀석을 늘 지지해주고 수용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누구나 내 존재 자체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싶다. 그 사랑에 대한 욕구가 충족될수록 자신이 가진 재능과 에너지로 좀 더 신나게 살아가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나부터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인정한다면 그 누구 덕분이 아니라 내가 나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부터 나를 토닥토닥 격려해주고 꼬옥 안아주자.
이미지 출처: https://lifelog-story.tistory.com/entry/MBTI-%EC%97%B0%EC%95%A0-%EA%B6%81%ED%95%A9-%EC%A1%B0%ED%99%94%EB%A1%9C%EC%9A%B4-%EC%84%B1%EA%B2%A9-%EC%9C%A0%ED%98%95-%EC%B0%BE%EA%B8%B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