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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나 Apr 22. 2020

나의 시작, 나의 도전


내 인생의 홈런
나는 25살에 내 인생의 홈런과 같은 남자 사람과 결혼했다. 내가 사랑한 남자 사람은 다정다감하고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함께하면 마냥 즐겁고 끝도 없이 대화를 하게 되곤 했다.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행복했는지 짜릿했는지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우리는 매일 같이 엠티를 하는 사람들처럼 소박하면서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아이 둘을 낳고 29살이 되었을 때 더 이상 프리랜서로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25살에 결혼하면서 한 번도 알바를 쉬지 않았던 나는 일명 프리랜서로 약 5년간 재택근무를 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집에서 끊임없이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일이었다.


새로운 시작
하지만 5년째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서 틈틈이 일을 한다는 중압감과 회사를 다니면서 조직 안에서 성장하고 싶다는 로망은 남편과 상의하지 않고 이력서를 작성하게 했다.
늘 내 결정을 존중해주는 사람이라서 이 일로 인해 남편이랑 결혼생활 후 처음으로 장기간의 냉전을 겪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고 싶은 건 하고야 마는 나
아빠가 공인이라서 늘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살아가는 것에 익숙했고 내 욕구보다는 다른 사람의 욕구를 소중히 여겼던 나는 당당하게 내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습관이 생겨 버렸다.
그래서 정말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누군가 반대를 할 거 같으면 말을 하지 않고 몰래 하거나 그냥 저질러버렸다. 엄마 아빠한테 말씀 안 드리고 남자 친구를 만나거나 공부한다고 하고 친구랑 영화 보러 가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굳이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가 없는 일도 나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해야 직성이 풀렸다.
욕심이 많고 고집이 세서 그렇게 한 건지 부모님이 내 의견을 존중해주지 않고 늘 반대를 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의사표현에 서투른 나
늘 바른 아이의 이미지를 주는 삶에 익숙했던 나는 싫어도 싫다고 못하고 좋아도 딱히 좋다는 표현을 맘껏 하지 않으며 감정이나 내 욕구에 대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갓 돌이 되어가는 둘째를 두고 직장생활을 하겠다고 남편에게 말하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있는 대학원 동기들이 무척 부러웠다. 대학원에서 공부한 전공을 살려서 취업한 동기들처럼 나도 언젠가는 직장을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했던 거 같다.
이제 딸이랑 아들을 낳았으니 직장생활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나는 이력서를 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반대할 거 같은 남편에겐 최종 합격 후에 통보했다. 내가 취직을 해서 회사에 다니겠다고...


사회생활의 시작

프리랜서로 5년 동안 육아를 하면서 재택근무를 했지만 일정 기간 동안 프로젝트의 일부분을 맡아서 스토리보드를 작성하는 일을 혼자 하는 것과 회사에 출근해서 프로젝트 전반을 책임지고 일정 관리를 하는 PM의 역할을 하는 것은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다.

그래도 5년 동안 프리랜서를 일을 했는데 뭐 얼마나 다르겠어라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혼자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것과 내가 기획한 기획서를 진행하는 것을 허락받는 일부터 해야 하는 PM의 업무는 참 많이 달랐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보니 일이라는 게 주어지지 않고 내가 일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획 업무를 하는 사람은 누가 일을 주는 것이 아니고 내가 기획한 프로젝트를 왜 해야 하는지 시장을 분석하고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어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만들 수 있었다. 내가 만든 기획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참 난감한 경험을 하게 된다. 혼자서 일을 하다가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이 즐겁고 신이 날 때보다 신경 쓰이고 피곤할 때도 많았다. 집에 가면 아이들과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아이들이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린다는 생각에 업무시간 내내 집중 에너지를 최대로 올리고 일에만 몰두했다. 일하는 틈틈이 차 한잔의 여유나 동료들과의 수다시간을 갖는 것은 정시 퇴근을 해서 집으로 달려가야 하는 워킹맘에겐 사치였다.


기획자로서의 첫걸음

남이 만들어 놓은 일을 받아서 하는 게 아니고 내가 처음부터 기획을 해야 하니 마치 내 사업하는 사람처럼 24시간 머릿속에 일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래도 5년 동안 일을 했는데 서른 살에 입사하면서 프리랜서 경력을 많이 인정받지 못했지만 실무자로서 나에게 기대하는 분위기를 느끼며 부담감도 많이 있었다. 잘하고 싶었고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고 싶었고 무엇보다 사용자에게 재미있는 학습경험을 주는 콘텐츠와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다.

나는 이렇게 디지털 교육용 콘텐츠와 서비스를 기획하는 기획자로서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고 늘 진심을 담아 내가 만든 콘텐츠와 서비스를 사용할 고객 입장에서 만족스러운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17년째 일하는 엄마

2008년에 새롭게 도전한 후 어느새 교육 콘텐츠 서비스 기획자로서 프리랜서 포함해서 17년째 일을 하고 있다. 나의 도전이 다양한 서비스의 밑거름이 되어 다양한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참 뿌듯하다. 현재 번째 이직한 회사에서도 우리 집 첫째와 둘째를 애지중지하며 키웠듯이 셋째와 같은 서비스를 론칭하여 키우고 있다.

현재는 청소년인 아이들도 간접적으로 사회를 경험하게 되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엄마와 의논하며 꿈을 키워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는 거 같다.


나는 나의 도전과 시작의 시절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고객에게 즐거운 학습 경험을 제공하는 교육 디지털 콘텐츠 서비스 기획자로 가능한 한 오래오래 일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도전을 해볼지 말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도전은 새로운 시작을 만듭니다. 우선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보세요.'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나는 지금까지 진심은 늘 통한다고 믿으며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믿고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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