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나 Apr 02. 2020

내 안의 아픈 나

01 첫 상실의 경험

나는 엄마니까

나는 꽤 여러 번 상담을 받아보았다.

내가 처음 상담을 받은 건 중학교 때부터 아끼던 친구의 자살 소식을 듣고 나서다. 친구를 떠나보내고 3개월 정도 혼자 있을 때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더 이상 두고 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술치료 집단상담에도 참석하고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개인상담도 받았다.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더 이상 눈물의 세월을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친구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집에 돌아온 후 한동안  친구가 마치 우리 집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세상을 떠나기 2개월 전에 먼저 연락을 하고 우리 집에 놀러 왔던 친구가 마지막으로 앉아서 나와 대화를 나누던 그 의자에 앉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참 묘한 느낌이었다. 한편으론 등골이 오싹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한없이 슬픈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그 어떤 말에도 위로받지 못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던 나는 충분히 슬퍼해야 그만 울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위로를 받았다.

이제 충분히 슬퍼했으니 그만 슬퍼하라는 말도, 마지막으로 만난 날에도 밝게 웃으며 얘기해서 잘 사는 줄로 알았다고 하 힘들어하는 걸 몰랐던 건 니 잘못이 아니라는 말도 아무 소용없었다.


3월 31일에 세상을 떠난 친구는 나와 이름이 같고 중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 잘 웃고 예쁘고 귀엽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잘하는 매력적인 친구였다. 글씨를 참 예쁘게 써서 친구가 보내준 편지를 볼 때마다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친구가 준 편지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했었다.

(이사를 가기 전에 엄마가 나한테 묻지도 않고 편지들을 다 버리기 전까지...)


4월 1일 만우절 아침...

새로운 회사에 출근한 지 1주일이 지난날이었다. 월요일 아침에 친구의 오빠라고 소개하는 분의 전화를 받았다. 세상에... 만우절이라서 장난전화가 온 거라고 생각하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

ㅇㅇ이가 이 세상을 떠났어요. 자살이라서 빈소를 따로 마련하진 않을 거예요. 친구들이 마지막 가는 얼굴을 보며 인사할 수 있게는 하려고요. ㅇㅇ병원으로 ㅇㅇ시까지 오시면 돼요.


전화를 끊고 나서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며 한동안 멍했다. 도저히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저 기가 막혔다. 그 후로 지금까지 친구를 마지막으로 만났던 1월부터 친구가 떠난 3월 말까지 그 친구가 떠난 지 몇 년째 구나라는 생각을 수시로 하게 되었다. 어제가 그 친구가 떠난 후 여덟 번째 만우절이었다. 지금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친구의 밝은 미소가 마음에 사무치게 생각나곤 한다.


매일매일 바쁜 날들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친구가 하늘로 돌아간 지 8년이 되었다.

오랜 시간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스스로 생을 등진 친구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라는 생각을 하며 위안을 삼곤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는 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면서 답답한 마음을 달래곤 한다.


오늘도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이들이 부디 없기를... 단 한 사람이라도 그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가 되기를 나도 모르게 기도한다.

그래도 끝까지 살아보자는 마음을 갖게 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시니까 긍휼의 하나님이시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