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하지 않기로 해요
어떤 마음이든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두려워하지
말고 내 마음에 귀기울이는 마음일기 쓰는 시간
말을 하면 송곳을 들고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맞는 말이라서 그럴 수도 있고 아프라고 함부로 말해서일 수도 있다.
아무리 좋은 말도 때와 장소를 가려가면서 해야 하는데 그녀는 아무때나 필터링없이 배설하듯이 말을 내뱉었다. 처음엔 깜짝 놀라며 대꾸를 하곤 했다. 거짓 공감의 말을 할 때는 ‘이 사람도 많이 힘들었나보다.’라며 그 사람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했다.
하지만 거짓공감이 반복되고 속내가 빤히 들여다보이는 조종의 말을 할 때 나는 결심했다. 이 사람과 거리를 두겠다고.
기관지염에 걸려서 심하게 기침할 때마다 마스크를 쓰는 모습을 보며 불쾌함이 극에 달했다. 분명히 감기도 코로나도 아니라고 말했는데 기침을 할 때마다 마스크를 쓰는 모습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기관지염이 심해서 죽을듯이 기침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원에 가 보라고 하고 휴가내라고 하는데 그녀는 코로나 확진자라도 보는 듯이 냉큼 마스크를 쓰곤 했다. 그 불쾌함은 마치 벌레를 본 사람의 행동마냥 즉각적이고 반사적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아쉬울 때는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도움을 구하고 질문을 했다. 늘 다른 이에게 도움을 구하면서 도움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모두다 그렇게 느꼈고 모두가 이기적인 그녀를 멀리하고 싶어했다.
처음엔 선입견없이 대하겠다고 뭘 그리들 예민하냐고 생각했던 나도 그녀를 멀리하기로 결심했으니 다들 놀라워했다. 역시 겪어보지 않고 지레짐작하고 결정하면 큰 코 다친다. 그래봤자 사람이지, 사연을 알고나면 이해 못 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 나의 불찰로 나는 지금도 곤경에 처해 있다.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과 옆에 앉아있다는 건 그 자체로 진 빠지는 일이다. 자리에 앉아서 아침과 점심을 먹고 매일 도시락 뚜껑을 열고 닫고 수시로 무언가를 씹는 사람이 옆에 앉아 있으니 동반 정서 불안에 걸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어느 순간 다리를 떠는 바람에 깜짝 놀라고 숨이 차 올랐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다리 떠는 행동에 신경이 예민해진다. 입만 열면 다른 사람 뒷담화를 하고 수동적 공격을 반복하니까 오히려 당하는 사람이 ‘나한테 문제가 있나? 내가 예민한 건가?’라는 이상 사고를 하게 된다.
‘그냥 무시하자. 그러든지 말든지 신경쓰지 말고 일하자.
업무에 집중하자.‘고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하는데 옆에 앉아있는 사람이 부산하고 어수선하게 움직이고 다리를 떨고 있으니 ‘성가시다’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본인과 무관한 타인들의 대화에 수시로 끼어들고 말을 자르기 일쑤이고, 자신의 욕구에만 집중하고 다른 팀 간식도 눈에 띄면 족족 입으로 가져가는 식탐도 막을 수가 없다.
본디 이기심과 욕심과 탐심으로 가득한 사람인양 행동하니 도저히 가까이 하고 싶지가 않다. 최대한 잘 지내보려고 했던 나의 노력이 무엇이었나 고민하게 만든다.
자리 이동 후 그녀의 양 옆에 앉아있던 이들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며 이미 남일로 치부하고 더 이상 자리는 바꿀 수 없다고 버티는 리더는 무슨 생각인지 알 길이 없다.
이 사태가 벌어졌으니 난 그저 올해가 빨리 가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올해 나의 꿈은 올해가 지나가는 것이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는 소중하게 쓸 생각이지만 곧 마지막 페이지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재미없는 소설을 보는 기분이다. 그래도 끝이 궁금해서 붙들고는 있으나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지금 들고 있는 책을 덮고 싶다.
새로운 책을 펼 기회가 있다면 다른 책을 읽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다. 그런데 내 책방 주인은 이 책을 다 읽어야지만 다른 책을 주겠다고 하니 나도 별 수가 없다.
내가 선택한 건 나 스스로 내가 예민한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불쾌하고 이기적이고 무례한 이방인을 강제로 내 기차에서 내리게 하고 내가 보는 책에서 그녀가 나오면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다. 굳이 불쾌함을 표현하며 그녀와 소통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
평생 한 번뿐인 내 인생의 책장이 올해는 불쾌한 소설로 채워지나보다 싶지만 그렇게까지 영향을 받고 싶지도 않다. 올해를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 등장하는 후회의 책으로 만들고 싶지도 않다. 어차피 평화로운 이웃이 되긴 글렀으니 휴전을 선포하기로 하고 휴전선을 그었다.
처음엔 휴전선이 있는 줄 모르고 무시하며 선을 넘어오던 그녀도 저만치 머무르고 휴전선을 받아들였다. 약간의 긴장감이 흐르긴 하지만 더 이상 그녀와 엮이지 않는다.
나를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해준 친구의 말대로 함부로 내 인생을 탐하던 그녀를 멀찌감치 세워둔 채 난 나의 책을 읽고 있다. 이젠 그녀가 조용히 내 책을 먼 발치에서 구경만 하는 구경꾼으로 남아주길 바란다.
마치 잠결에 윙윙 대는 모기처럼 그녀는 나의 책장에서 사라졌다. 더 이상의 변수는 없기를~~ 안타까운 인연의 끈은 여기에서 놓기를~~
#마음일기 #직장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