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의 시대; 교회는 나아갈 것인가, 남겨질 것인가
"주일에는 예배드리러 간다"
이 말은 더 이상 모든 크리스천에게 당연한 일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교회 공동체에서 뿐만 아니라, 코로나는 주변의 당연했던 모든 것을 비판하고 부정한다. 간과하고 무시하면 없어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모두의 눈앞에 끌어올려, 무심하고 무책임했던 사회의 민낯을 들추어내는 힘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교회 공동체는 목표를 잃었다.
그 이유는 교회가 젊은 세대가 좇을 수 있는 목표를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 주요 원인이 된다.
지금의 교회가 목표를 전혀 제시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위로 대표되는 교회 규모의 성장을 위한 표어들이 젊은 세대의 도전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새롭지 않기 때문이다. 양적 성장은 이미 지난 수십 년간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키워드였다.
"그래도 우리는 아직... "이라는 말은 몇몇 지도자 개인들의 욕심은 될 수 있어도 이미 우리 교회가 아니어도 충분히 규모의 성장을 이룬 교회가 주변에 즐비하고, 코로나로 매주 내가 다니던 예배당을 다음 주에도 나갈 수 있다는 당연했던 사실이 모호해짐에 따라 '내 교회'의 의미가 퇴색되는 이후 시대에 더 이상 목표가 될 수 없다.
예배 제한에 따른 출석 교인의 변동과 이로 인한 재정적인 어려움은, 상대적으로 일시적일 수 있다. 그러나, '내 교회, 내 직장, 내 학교, 개념의 퇴색화'는 이미 우리 사회 전반에서 이루어지고 있었고, 코로나가 그것을 전 지구적으로 앞당겼을 뿐이다.
'목표가 새롭지 않기 때문에 젊은 세대가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 마치 이 세대 모두가 새것만을 쫓는 '유희'와 '쾌락'에만 미친 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미 우리의 역사가 이전과는 다른 장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늦었지만 시대에 맞게 새로워져야 하는 것이다.
젊은 세대와 현재 실질적으로 교회의 경제적 지원에 큰 부분을 책임지는 장년 세대 간의 목표와 시대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교회 내에서 세대 간의 골이 깊어지게 만들었고 이는, 한국 교회의 초창기와 비교할 수 없는 인프라와 교인의 수, 경제적 지원이 풍부해졌음에도 교회를 생산적이지 못한 곳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요, 교회는 그의 몸"이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교회가 처한 현실이 안타깝더라도 머리에서 떨어진 몸은 있을 수 없다. 생산적이지 못한 여럿도 문제지만, 나 혼자 더 생산적이 되겠다고 하는 것은 오만이다.
이 시대 모두가 코로나를 완벽히 예상하지 못했고, 모두가 대처에 늦었다. 하지만 발 빠르게 이후 시대를 준비하는 움직임이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교회만이 이전의 영광을 그리며, "언젠가는 이전처럼 돌아갈 수 있겠지..."라는 헛된 꿈을 꿔서는 안 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변해야 한다.
범한국적인 차원에서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다른 무엇이 아니라 선교와 우리 주변에서부터 구원의 기쁨을 깨닫고 알리는 일을 청년 세대에게 구체적인 목표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더해서, 코로나로 인해 수면 위로 떠오른 이단 문제와 젊은 세대의 클럽 문화, 동성애 문화 등에 대해서도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전부터 예배당에 모여 이야기는 많이 해왔으나, 규탄의 대상으로만 삼을 뿐, 정작 그곳을 찾아가는 대상들의 상황과 심리, 그리고 그 정체성에 대한 이해는 없었던 부분들을 다시 접근해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필히 개교회의 개념을 뛰어넘어, 스스로의 죄를 고백하고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주님 안에 한 형제, 한 자매"가 모여, 시대 인식과 정보와 인력과 목표를 공유하고, 협력하는 네트워크가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