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날 현 Nov 07. 2023

그 남자의 행방이 묘연 (猫緣)하다

자원봉사를 하다 만난 고양이.

21세기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낡은 건물들이 빼곡하게 밀집되어 있는 거리. 곳곳에 반공 포스터와 현수막이 걸려있는 이곳은 전라남도 순천에 위치한 드라마세트장이다. 오늘 난 이곳에서 열리는 ‘7080 시간여행’ 축제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내가 맡은 일은 행사장 곳곳에 추락사고 위험이 있는 통행로에서 관광객들의 안전사고에 대비하여 경비를 서는 임무였는데 가끔씩 단체로 오신 관광객분들을 위해  서비스로 배경 좋은 곳에서 사진도 찍어주고 고맙다는 인사도 받을 수 있는 보람 있는 일이었다. 행사장에서 대여한 교복을 커플룩으로 맞춰 입은 어느 커플을 찍어주고 자리로 돌아가려던 그 순간,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난 곳은 드라마세트장 관광안내소 입구 쪽이었는데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왠 시루떡 하나가 깡충거리며 안내소 입구 주변을 요리조리 맴돌았다. 그 쪼그만 녀석이 초등학생 꼬마애들과 정신 사나운 추격전을 피하러 안내소 앞 매점에 들어가 구석에 숨자, 나는 녀석의 구원자가 되어주기로 했다. 난 꺅꺅 거리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손을 뻗어 녀석의 목덜미를 잡고 끄집어 내 근처 풀숲에 놓아주고 근처에 나뒹구는 물양동이에 물을 받아 녀석의 눈앞에 놓아주었다. 긴장해서 목이 탔는지 녀석은 꼴깍꼴깍 잘 마셔댔다.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울 수 없어 내 위치로 돌아가서 현장통제를 하다가 잠시 자리에 앉자 어느 관광객 가족들이 구석진 곳을 가리키며 ‘어 저기 봐’ 하고 소리치는 게 들려왔다. 그쪽으로 가보니 아까 보았던 시루떡이 내가 앉아있는 곳 뒤쪽 컨테이너 박스 앞을 아장거리고 있었다. 행여 행사장 관광객들에게 치이거나 다리 아래로 떨어질라, 난 녀석의 목덜미를 집어 들어 가슴에 안고 볼을 만져주었다. 녀석은 곧바로 눈을 감고 가르릉 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다시 처음 내려준 풀숲으로 데려다주려던 찰나, 매점 직원분이 ‘어? 콩이 여깄다’ 라며 내가 안고 있던 시루떡을 가리켰다. 사연인 즉, 녀석은 고아였다. 타 지역에 있던 고양이 일가의 아이중 하나였는데 어미가 녀석만 남겨둔 채 형제들을 데리고 떠나다 교통사고를 당해 모두가 고양이별로 가버려서 매점 아주머니가 딱한 마음에 데리고 와 사료만 가끔씩 챙겨주신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날 잘 따르는 것 같으니 데려가 키워주면 좋겠다는 거였고, 남매로 보이는 매점 직원분들도 제발 데려가 길러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안 그래도 집에 네 마리씩이나 있어 곤란하다 말하면서도 내 품에서 가만히 가르릉 거리는 녀석을 보고 노력은 해보는데 만약 기존에 있던 아이들과 잘 지내지 못하면 다시 데리고 오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원봉사가 끝날 때까지 녀석은 내 품에 안겨 울지 않고 눈을 감은채 가르랑 거렸다. 관광객들도 웃겼을 것이다. 키 181에 곰같이 생긴 남자가 여자 손바닥 만한 아깽이를 안은 채로 경광봉을 들고 현장통제를 하고 있으니.. 자원봉사가 끝나고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올 때까지 녀석은 단 한 번도 을지 않았다. 내가 입고 있던 후드 집업을 벗어 녀석을 안고 가는 중간에 녀석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지금껏 많은 고양이를 만났지만 고양이가 눈물을 흘리는 건 그때 처음 보았다. 그렇게 끝이 언제인지 기약할 수는 없지만 가능한 오래 이어지길 바라는 녀석과 나의 묘猫한 인연이 시작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