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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 현 Nov 21. 2023

그 남자의 행방이 묘연 (猫緣)하다 -3-

천방지축이 이런 뜻이구나.

한낱 피조물로써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생물의 삶과 죽음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내 숭고한 의지는 11월 4일 자원봉사를 끝마치고 집에 오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게 다 저 녀석 때문이다. 1kg도 안 되는 저 시루떡 같이 생긴 털뭉치. 녀석은 우리 집에 온 첫날부터 마치 제 집인 양 적응을 해버렸다. 내방 침대에 눕혀놓은지 십 분도 채 안되어서 가르랑 거리며 잠들지를 않나, 배고프다며 빽빽 울어대지 않나, 내가 잠자고 있으면 얼굴 쪽에 와서 자기 엉덩이를 내 코에 들이밀지를 않나.. 정말 뻔뻔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집에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처음엔 온몸에 털을 곤두세우며 경계하던 이모•삼촌 뻘 되는 다른 고양이들 한테도 기세 좋게 냥냥 펀치를 날려대며 꼬리를 덥석 깨문다.


하는 짓이 붙임성 있고 귀엽다. 머리도 영리한 편인지 침대 옆에 계단을 놔주니 그걸 통해 내 침대릴 오르내리고, 대충 바가지에 기존에 우리 집 고양이들이 쓰던 모래를 조금 부어주니 화장실인 줄 알고 알아서 대소변도 잘 가린다. 내가 손으로 간지럽히면 발라당 드러눕다가 와락 하고 내 손을 달려들어 덥석 깨문다.


집안에 작은 아이가 있으면 활력이 돈다는 말처럼 시루가 집에 오니 기존에 우리 집에 있던 아이들도 평소보다 더 이리저리 뛰어다닌다(대체로 도망 다닌다) 나도 평소보다 집에 일찍 들어가고 있다. 오늘은 특별히 녀석을 위해 계란 노른자에 영양가 있는 이유식을 만들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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