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 보는 나만의 생일 사주
오늘의 촉매제. 수
나는 수(number)를 좋아한다. 숫자들 사이에서 규칙을 찾아내는 IQ 테스트식 문제를 푸는 것이 좋다. 머리를 너무 안 썼다 싶을 때면 <멘사 수학 퍼즐>을 꺼내서 풀어본다. 막히는 고속도로 위에서는 번호판 속 4자리 수로 10 만들기를 하며 지루함을 달랜다.
태어난 날도 모두 숫자다. 이 숫자들을 또 가만히 두지 못 하는 나다. 동양에서는 년, 월, 일, 시, 이 네 가지 기둥으로 사주를 본다는데, 나는 태어난 월과 태어난 일로 나만의 사주를 만들어 의미를 부여했다. 월과 일, 두 가지 기둥만 사용하니 '이주'가 맞는 표현이겠지.
시작은 이러했다. 내 생일은 9월 4일이다. 내 생일을 아는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뚱딴지같은 말을 해왔다. "너 효녀 심청이 태어난 날 태어났구나" 이건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그 당시 넌센스 퀴즈가 유행이었다. 책까지 사서 볼 정도로. 친구가 건넨 넌센스 퀴츠 책 속에 '효녀 심청이 태어난 날은? 구사일생'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날로 내 생일에 의미가 생겼고, 생일을 묻는 사람이 있으면 '효녀 심청이 태어난 날'이라고 답한다.
구사일생. 아홉 번 죽을 뻔하다 한 번 살아난다는 뜻으로,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고 겨우 살아남을 이르는 말이다.
나에게도 죽을 뻔하다 살아난 사건들이 몇 번 있었다.
내가 기억하지는 못 하지만 갓난아기 때 더운 여름, 상한 분유를 먹고 죽을 뻔했다고 한다.
전국 대학 동아리에서 어느 지역 지부장을 맡게 된 후 첫 모임에서 다들 축하한다고 술을 권했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던 나였기에 나의 주량을 나도 몰랐고 동아리 친구, 선후배들도 몰랐다. 어느 순간부터의 기억이 하나도 없다. 단지 죽음의 강을 건너갔다 다시 넘어온 느낌만 남아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얘기로는 정말 죽은 줄 알았다고.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에 산행이 있었다. 저질 체력인 나는 산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자라서 못 한다', '여자라서 도와줘야 한다' 이런 얘기 듣는 것은 더 싫어하던 나다. 남자들보다 더 강인하게 해내는 모습에 동기들 사이에서 '철인 28호'로 불렸다. 뒤쳐지면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를 악물고 맨 앞에서 걸었다. 눈앞이 하얘질 때까지. 그리고 봉우리를 뛰어넘어야 하는 순간 비틀, 헛디뎌서 낭떠러지로 떨어질 뻔했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죽을 뻔 한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았으니 앞으로의 인생은 무탈하기를.
남편 생일은 1과 2로만 되어 있다. 생각도, 고민도 해 볼 필요 없이 그냥 딱 떠오르는 것이 있다.
일석이조. 돌 한 개를 던져 새 두 마리를 잡는다는 뜻으로, 동시에 두 가지 이득을 봄을 이르는 말이다.
저어기 시골마을의 종갓집 장손으로, 요즘 시대 결혼하기 아주 힘든 조건인 그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전형적인 결혼 생활과는 맞지 않는 성향인 나에게 나의 엄마는 정말 할 수 있겠냐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했고, 그의 엄마는 연신 고맙다며 종부가 해야 할 일들을 본인 세대에서 줄이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를 만나 결혼이란 것을 함으로써 그는 부모님께 효도를 했고, 죽고 못 사는 예쁜 딸까지 얻었으니 일석이조가 맞다.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노력보다 더 큰 행복이 함께 하기를.
딸에게 엄마는 '구사일생', 아빠는 '일석이조'라며 생일의 의미를 얘기해 준 적이 있다. 어려서 이해를 하지 못했던 아이가 어느 날 자기 생일은 사자성어로 뭐냐며 물어왔다.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다. 딸의 생일에는 7과 8만 있다. 7과 8이라 오래 고민할 것도 없이 '칠전팔기'로 정했다.
칠전팔기.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일어난다는 뜻으로, 실패를 거듭하여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섬을 이르는 말이다.
마침 방학 숙제인 독서록을 쓰기 위해 <발명 형제, 사고 치다>를 읽고 있었는데 책 속 한 페이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어요. 실패하더라도 그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도전하면 된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멋지게 성공할 수 있어요." 딸아이는 자기 생일이 갖는 의미가 마음에 들었던지 독서록에 "내 생일 사자성어 '칠전팔기'처럼 실패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할 거다"라고 적었다.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이 마음 잊지 않고 항상 도전하기를.
데이터 값에 의해 주어지는 사주에 나의 인생을 맡기지 말자. 나의 인생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