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수많은 책 속에서 진짜 원하는 책을 찾지 못하는가
우리는 책이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진정으로 읽고 싶고 소장하고 싶은 책을 찾지 못해 목말라한다. 이 역설적 상황의 근원을 찾아 들어가면, 우리가 책에 대해 품고 있는 근본적 환상과 현실 사이의 심연을 발견하게 된다.
책이라는 존재는 태생적으로 모순적이다. 한편으로는 지극히 물질적인 상품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형이상학적 욕망의 대상이다. 우리는 책을 사면서 종이와 잉크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무언가'를 얻고자 한다. 그 무언가란 지식일 수도 있고, 위안일 수도 있고, 변화의 가능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책을 다 읽기 전까지 알 수 없다. 아니, 읽고 나서도 종종 알 수 없다. 이런 근본적 불확실성이야말로 책에 대한 우리의 갈망이 영원히 충족될 수 없는 이유다.
현대의 독자들은 무의식중에 책을 '해결책'으로 여긴다.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줄 책, 내가 몰랐던 진실을 알려줄 책,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책을 찾는다. 하지만 이런 기대 자체가 책의 본질을 오해한 것이다. 책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진다.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복잡성을 드러낸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복잡성을 견디지 못한다. 빠른 답변, 명확한 지침, 즉각적인 효과를 원한다. 이런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수많은 '솔루션 북'들이 쏟아져 나온다. "7일 만에 바뀌는 인생",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행복해지는 법칙" 같은 제목들이 서점을 가득 메운다.
하지만 진정한 책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진정한 책은 독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기존의 생각을 흔들고, 확신을 의심하게 하고, 새로운 질문에 직면하게 한다. 카프카가 말했듯이,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여야 한다." 하지만 누가 자신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고 싶어 할까? 우리는 위안을 원하지 도전을 원하지 않는다. 확신을 얻고 싶지 혼란에 빠지고 싶지 않다.
이런 근본적 모순 때문에 현대의 저자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진정으로 할 말이 있는 저자라면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불편함을 주는 책은 팔리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저자들이 타협한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희석시키고, 날카로운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고, 복잡한 진실을 단순한 격언으로 포장한다. 그 결과 나오는 것이 바로 우리가 서점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읽을 만하지만 소장하고 싶지는 않은' 책들이다.
출간 동기의 변화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과거에 책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소명이었다. 평생 축적한 지혜를 후세에 전하고, 자신이 발견한 진실을 세상과 나누고, 인류의 지적 유산에 기여한다는 숭고한 목적이 있었다. 물론 이런 이상이 항상 실현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런 지향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책 쓰기가 일종의 마케팅 수단이 되었다. 개인 브랜드를 구축하고, 전문성을 어필하고, 강연료를 올리고, 컨설팅 기회를 늘리기 위해 책을 쓴다. 이런 동기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런 동기로 쓰인 책들이 독자의 영혼을 울리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저자됨'의 의미가 희석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저자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준비와 숙성의 시간이 필요했다. 충분한 경험을 쌓고, 깊이 있게 사유하고, 자신만의 독창적 관점을 형성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쉽게 저자가 될 수 있다. 블로그 포스팅을 모아서 책을 내고, 유튜브 강의 내용을 정리해서 출간하고, 심지어 AI의 도움을 받아서도 책을 쓸 수 있다. 이런 변화가 민주적이고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동시에 저자와 독자 사이의 권위적 관계를 무너뜨렸다. 독자는 더 이상 저자를 자신보다 뛰어난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그냥 조금 앞서 경험한 동료 정도로 생각한다. 그런데 동료의 이야기는 위안을 줄 수는 있어도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독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진짜 스승'을 갈망한다. 자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메시지,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관점, 자신의 세계관을 뒤흔들 수 있는 혁명적 통찰을 찾는다. 하지만 그런 것을 줄 수 있는 저자는 극히 드물다. 설령 그런 저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메시지는 너무 급진적이거나 불편해서 대중적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찾지만 찾을 수 없는 책을 갈망하게 된다.
소장 욕구의 심리적 뿌리를 파고들어 보면 더욱 복잡한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책을 소장한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가능성'을 저장하는 것이다. 내가 언젠가 그 책에서 필요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 그 책이 나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 책 안에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보물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사서 집에 모셔두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대 도서들은 그런 가능성을 품지 못한다. 한 번 읽으면 끝이다. 다시 펼쳐볼 이유가 없다. 새로 발견할 것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책들을 소장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소장하고 싶은 책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지는 책이다. 처음 읽을 때와 몇 년 후 다시 읽을 때 완전히 다른 책으로 느껴지는 책이다. 독자의 성장과 함께 새로운 의미를 드러내는 책이다. 하지만 그런 책을 쓰려면 저자 자신이 먼저 그런 깊이를 가져야 한다. 단순한 정보나 경험담을 넘어서서, 인간 존재의 근본적 문제들과 씨름한 흔적이 담겨야 한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그런 깊이 있는 성찰을 허용하지 않는다.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쫓아야 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얻어야 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해야 한다.
디지털 혁명은 이런 경향을 더욱 가속화했다. 정보의 생산과 유통 비용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지면서, 정보 자체의 가치는 폭락했다. 예전에는 귀했던 지식들이 이제는 구글 검색 한 번으로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책은 무엇을 제공해야 할까? 단순한 정보나 지식이 아니라, 그것들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관점이어야 한다. 하지만 관점을 형성하려면 오랜 시간과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우리가 책에서 찾고 있는 것은 사실 책 자체가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정말 갈망하는 것은 변화의 경험이다. 새로운 자아로 다시 태어나는 경험, 세상을 완전히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경험, 지금까지의 삶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의 경험이다. 하지만 그런 변화는 책만으로는 일어나지 않는다. 책은 촉매일 뿐이다. 진정한 변화는 독자 자신의 내면에서, 삶의 경험과 책의 내용이 만나는 지점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런 능동적 역할을 회피한다. 책이 알아서 우리를 바꿔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근본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결국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책이 아니라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변화의 경험이다. 하지만 그런 경험은 책과 독자가 만나는 특별한 순간에만 일어난다. 독자가 삶의 특정한 문제와 씨름하고 있을 때, 저자가 제시하는 관점이 그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게 해줄 때, 비로소 진정한 독서 경험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계획하거나 강요할 수 없다. 우연히, 때로는 기적처럼 일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찾는다. 그런 기적적 만남을 가능하게 해줄 책을, 아직 만나지 못한 나의 스승을, 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메시지를.
이런 갈망은 본질적으로 충족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찾는 것은 책이 아니라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자기 자신의 새로운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만남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찾을 것이다.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 그런 기적적 만남이 일어날 것이다. 그때의 기쁨은 수많은 실망을 보상하고도 남을 것이다. 바로 그 가능성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서점을 헤매고, 여전히 새로운 책을 갈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