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에 대한 고찰

by 루케테

고집이란 자기의 생각과 의견을 잘 바꾸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 단어는 동적인 단어와 가치판단과 관련한 의미를 포함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성격, 그러한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이며, 시공간을 초월하는 절대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도 아니고, 그 순간만 찰나에 발휘될 수도 있고, 영겁의 세월로 박제될 수도 있는 그러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고집이라는 단어는 뒤에 붙이는 서술어로 인해서 의미가 명확해지고, 상황과 맥락에 따라 어떠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고집이 있다'라는 말은 보통 타인이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데 주로 사용하는 표현으로 타인이 자신의 성향에 대해 이해는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으로까지는 발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이 저 상태가 현재는 자기에게 큰 해가 되지 않지만, 잠재적으로 저 고집으로 인해서 자기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경계감이 들어가 있는 표현이다.


이 표현이 더 강해져서, 고집으로 인해 타인이 본격적으로 힘들어지는 시점에서는 '고집이 세다'라는 표현으로 바뀐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고집이라는 건 자기 자신만 있을 때 성립될 수 있는 단어일까? 아니겠지.. 앞에 고집의 정의를 통해 보면, 외부의 자극이 반드시 주어져야지 고집이라는 단어가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고집이라는 것은 타인의 평가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임에 따라 타인이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바꾸려는 시도가 있어야만 고집이 있다. 고집이 세다라는 표현이 생기게 된다. 즉, 고집이 세다는 것은 정확히 말해서 단 방향으로만 적용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의견과 생각을 바꾸지 않으려는 고집이 세다고 평가받는 만큼 타인은 그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바꾸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저 녀석 고집이 참 세다'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역시 고집이 상당한 사람인 것을 이해하여야 한다.


그렇지만 반대의 개념은 성립하지 않는다. 자신이 고집이 약하다고 하여 상대방의 고집도 약하다고 할 수는 없다. 자신이 고집이 상대적으로 약해서 먼저 꺾이는 경위에 자신의 고집이 10이고, 타인의 고집이 11일 수도 있고 자신의 고집이 10이고, 타인의 고집이 100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고집은 10을 발휘하고 꺾여 버렸는데, 타인의 고집은 90만큼 더 남아있는 것이니, 이 때는 타인의 고집이 강한 것일 테고, 1만큼 남아있었다면 타인의 고집이 약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이미 먼저 고집이 꺾인 사람은 고집이 꺾이지 않은 사람의 고집의 세기가 11인지 100인지 알 수 있을 방편이 없다. 그러니 먼저 자기가 고집이 꺾였다고 상대방이 고집이 더럽게 강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성급한 측면이 있다




지금까지 길게 서술한 것은 결국 이런 것이다. 자기 자신의 관점에서만 판단하지 말자. 제3의 눈으로 생각해 보자는 것임.


그리고 고집에 가치판단을 넣어보자. '고집'이라는 단어만으로는 가치판단의 요소가 없다. '고집이 세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자신의 영향을 미치는 범위에 있는 사람들까지만 최대한 공유할 수 있는 영역이며, 이런 단어는 보통 부정적인 의미가 된다.


다만, 고집을 유사어인 '소신'이라고 생각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소신'은 타인으로 인정받은 고집이기 때문이다. '고집 센 발언', '소신 있는 발언' 어감이 매우 다르지 않는가. 그리고 고집 세다를 말은 타인이 약간의 우월한 위치에서 자신을 살짝 낮게 보면서 표현하는 단어인데, '소신'이라는 말을 자신을 존중하는 의미가 살짝 포함되어 있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런데 타인으로부터 '소신'이라고 평가되는 그것 자체를 폄하하는 사람들은 그 '소신'이 나쁘다고 하지 않고, '소신'이 무력하다는 식으로 얘기하기도 한다.





그럼 '고집'의 또 다른 유사어로 '신념'의 의미를 살펴보자.

'신념'은 '소신'과 정말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둘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소신'은 그것 자체는 존중하지만, 무력하다고 폄하하고, '신념'은 그것 자체는 강하지만, 나쁘다고 평가한다.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위험하다'라고 얘기하지

'무식한 사람이 소신을 가지면 위험하다'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즉, 일단 '신념'이라는 개념까지 고집이 발전하면 이는 매우 강한 단어가 되고 이 때는 가치판단의 영역으로 개념이 확장된다.

그리고 신념은 고집과 달리 동태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굳게 믿고 이를 실현하려고 하는 의지를 신념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태적이라는 의미는 '과정'이 있고 '결과'를 낸다는 의미이고, 결국 신념에 대한 평가는 '과정'과 '결과'로 인해 평가받는 것이다.


그런데 평가를 하는 입장에서 '과정'에 초점을 두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고, '결과'에 초점을 두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다. '과정'에 초점을 두고 평가하는 사람은 '신념'을 실현시키는 과정이 정의로운지, 공정한지를 보고 평가하겠지만. '결과'에 초점을 두고 평가하는 사람은 '신념'을 이행하면서 만들어진 결과를 보고 그 나름대로의 가치판단 기준을 대입하여 평가를 할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우선적으로 사람들이 평가하는 것은 '결과'에서부터이다. 그 결과에서도 우선 '성공여부'부터 먼저 평가한다. '신념'을 이행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였고, 성공하여 어떠한 결과를 이루었으면, 그 결과가 좋은지 나쁜 지부터 파악하고 난 이후에 결과가 좋으면 과정이 정의로웠는지, 그리고 비열했는지를 평가하게 되고, 과정이 비열했으면 결과를 폄하하는 경우가 있게 된다.


그런데 신념이 성공하지 않았으면 그 신념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간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과정이 정의로웠는지 비열했는지에 대해서도 평가받지 못하고 잊히게 된다. 운 좋게도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처럼 후대의 역사가로부터 잊히지 않고 크게 평가받는 경우도 생기지만은 그러한 경우는 드물다.


그러면 여기서 신념의 구체적인 예시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런데 이렇게까지 서술했는데, 신념의 구체적인 예시는 참으로 들기 힘들다.

어떤 자료에는 '비합리적 신념'과 '합리적 신념'이라고 구분하면서 예시로 드는 것들이


1. 일이 내 뜻대로 된다면 좋지만, 내가 원한다고 해서 끔찍할 이유는 없다.

2. 현재 내가 겪고 있는 정서적인 괴로움은 주로 내가 사건들을 보고 평가하는 방식을 변화시킴으로 조절할 수 있다.

3. 자신이 인간적인 제한점이 있고 실수를 범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이런 게 어떻게 신념의 범위로 들어가는 거지? 인식이나 관점 정도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지 실행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이 어떻게 신념일 수가 있는지..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념이라는 것은 이런 수준일 뿐인 것인가? 결국 신념이라는 개념은 개념 그 자체로는 엄청나게 의미심장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적용되는 사례는 그에 한참을 못 미치는 빚 좋은 개살구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이니, 진짜 지질한 것이라도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 타인과 구분받을 수 있게 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대로 된 신념을 가지지 않은 상태이고, 이에 따라 신념을 제대로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회도 없었고, 그에 따라 연습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진짜 이상한 신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추종받고 이 사람을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를 듣고 그러나 보다. 즉, 그런 사람들이 모여져 있는 국회란 조직이 저렇게 밖에 안 되는 이유도 거기에서부터 나오나 보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신념을 가지기 힘들어진 걸까? 신념은 작게부터 시작해야 하고 그것은 고집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고집이 부정적인 의미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해서, 고집이 신념으로 발전하기 전에 이미 꺾어버리기 때문일 거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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