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을 위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
각자도생을 시대에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으로 가져야 하는 마인드는 무엇일까?
'모른다.'
이다.
자신을, 타인을, 사회를, 미래를 '알 거 같다'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모른다'라고 생각하는 태도야말로, 각자도생 시대를 성공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으로 깔아야 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나는 학창 시절 때부터 사람에 대해 알고 싶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자연 풍경을 구경하기보다 사람을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 사람이 이러한 행동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는데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나름대로 연구하고, 심리학 등을 공부하면서 사람을 어느 정도 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을 알려고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얻게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고립'이었다. 사람에 대한 지식과 통찰이 쌓여가면서 덩달아 늘어나는 것은 사람에 대한 회의감이었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욕심이 많았다. 감정적이었으며, 어리석었다. 부처님이 지적하신 대로 탐. 진. 치의 허물 속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를 뚫고 나온 사람은 드물었다. 내가 쌓아온 복덕이 많지 않아 현인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기에, 사람에 대한 회의감은 더욱 쌓여갔다. 회의감은 나를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 없도록 하였다.
만약에 내가 사람에 대해 '알 거 같다'라는 생각이 아닌 '모른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어땠을까?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지식을 대입해서 판단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모른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열고 대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고립되지는 않았겠지.
'모른다'는 마음은 '공포'를 불러오기도 한다. 사람이 '잘 알지 못하는 대상'에게 '공포'를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타인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섣불리 받아들이다 보면 못된 사람으로부터 해코지를 당하기 일쑤일 것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자. 우리가 상대를 모르기 때문에 나쁜 타인으로부터 피해를 보았는지, 아니면, 잘못된 앎 때문에 피해를 보았는지 말이다. 사기꾼들은 무식한 부분을 타깃으로 삼지 않는다. 사기꾼은 잘못된 앎을 타깃으로 삼는다. 책 '김 부장 이야기'에 나오는 김 부장이 마지막에 분양 사기를 당하게 된 것도 어쭙잖게 알고 있는 지식 때문이었다.
각자도생의 시대에는 스스로를 지켜야 하며 타인과의 관계도 주체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지나친 의지도 지나친 고립도 아닌 그 중간의 어딘가에 자신을 놓아야 한다. 이를 실행하는 가장 기본적인 마인드가 바로 '모른다'이다.
타인을 알고자 하는 노력은 사회를 알고자 하는 노력으로 확장되었다. 성장하면서 사회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면서 얻게 된 것도 회의감이었다. 우리 사회가 잘못된 게 눈에 보이고, 이대로 가면 다 같이 공멸하는 게 눈에 보였다. 물론 나름대로의 해결책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해결책을 실제로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름대로 생각한 해결책은 실존하지 않는 '선악의 판단'에 막혔고, 사람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인 '이념 논리'에 막혔다. '선악'이든 '이념'은 '알 거 같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최종적으로 이를 이용하여 개인의 '욕심'을 채우려는 마음과 연결된다. 그럼에도 '선악'과 '이념'은 공멸해 가는 사회의 변화를 저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선악의 판단'과 '이념'은 공멸하는 세상을 구원하고자 나선 '타노스'를 쓰러뜨린 강력한 무기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흔히 받아들이는 '이념'에 기반한 '선악'의 기준에서 '타노스'는 '악'이었기에 말도 안 되는 시간 여행이라는 조건이 만들어지면서 결국 패퇴하는 결과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타노스의 패퇴는 마블의 패퇴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는 '사회'에 대한 일은 '모른다'라는 생각을 가지기로 했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든지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라가 망하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인가. 사회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선악을 이념을 이용하는 위선자들로 가득 차 가는데, 이러한 사회를 생각하는 건 무의미하고 헛된 노력이었다. 사회를 위하는 마음을 가질수록 아파지는 건 내 마음뿐이었다. 이럴 바에는 내 인생을 생각하는데 치중하는 게 나았다.
하지만 '모른다'라는 마음가짐은 나 자신을 바라볼 때에도 기본으로 깔고 있어야 하는 마인드이다. 사람에 대해 알고 싶었던 노력보다, 사회에 대해 알고 싶은 노력보다 더 많이 한 것은 나에 대해 알고 싶은 노력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능력이 있고, 나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 것인지에 대해 알고자 하는 노력을 많이 하였다. 끊임없이 나의 미래를 설계해보기도 하고, 가능성이 있고 성취 시 이득이 많은 것을 향해서 나의 인생을 꾸려가고자 노력했다. 이를 알기 위한 공부도 많이 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나의 노력은 인생을 너무나 단순하게 만들었다. 나에 대한 이해, 타인에 대한 이해,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합쳐지면서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향을 선택해서 인생을 꾸려가고자 했다. 그 길은 너무나 좁았다.
지금의 세상이 '각자도생'의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사회가 하라는 것과 반대로 하여서 훨씬 큰 이득을 얻은 사람이 많아진 것을 목도하면서부터였다. 국가가 부동산 투자를 적극적으로 저지할 때 부동산 투자를 하면 큰 이득을 얻고,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만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면 이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매력을 개발하고 어필했던 사람이 더욱 큰 성공을 얻는 경우를 보면서 지금은 각자도생의 시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인공지능은 사회가 공인하였기에 가치를 가지게 된 모든 것들을 대체할 것이다. 회계사, 변호사, 기자, 공무원 등등. 자기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기보다 사회가 부여하는 가치를 얻어먹으며 성장해 나간 사람들은 모두 인공지능으로 대체되어 갈 것이다. 결국, 자신만의 길을 가고, 스스로 가치를 창출한 사람들만이 남게 된다.
이러한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모른다'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 길을 가면 (타인과 사회가 인정하는 길이 아니기에) 실패할 거라는 것을 난 알아'가 아니라, '어떻게 될지 모르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이 길을 가볼 거야'라고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서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고 자기 자신만의 발로 우뚝 섰을 때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각자도생'의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늦었다면 늦었고, 늦지 않았다면 늦지 않은 시점이다. 인공지능 아래에서 일할 것인가?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그 시작은 '모른다'라는 작은 마음가짐의 변화에서 비롯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