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삶은 다채롭다
한겨울엔 반팔이 입고 싶어진다. 두꺼운 옷 대신 반팔 하나 입고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싶다. 올 겨울 들어 최강 한파가 닥쳤다는 소식을 들으니 더더욱 그렇다. 100수짜리 두툼한 티셔츠도 아니고, 60수 얇은 티셔츠를 입고 밖을 쏘다니고 싶다.
밖이 추울수록 반팔 상상은 진해진다. 여름이 와야지만 옷 입는 재미가 있을 것만 같다. 왜 지난 여름엔 땡땡이 티셔츠에 청바지만 입고 돌아다니지 않았을까- 따위 생각이 자꾸 든다. 그러다보면 당장 내일 입어야 하는 두꺼운 니트보다 당분간 아무짝에 쓸모없을 반팔 티셔츠들이 더 소중해진다.
문득 올 여릉에 입을 반팔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반팔 티셔츠를 쇼핑하는 나를 발견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춥다지만, 나는 새로 주문한 반팔을 입을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가, 문득 여름이 오려면 한참 남았다는 사실을 알고 조급해진다. 작년 여름에 사두고 세 번도 채 입지 않은 땡땡이 티셔츠는 얼마간 쳐다보지 않기로 한다. 여름이 오면 닳도록 입어주겠노라 다짐하며.
문제는 여름에도 똑같다는 거다. 폭염이 오면 겨울이 간절하다. 추운 날씨가 그리워서는 아니다. 맵시 부리기 힘든 여름옷보다는 실루엣이 다채로운 가을, 겨울옷을 입고 싶어서다. 멋없이 팔꿈치 위에서 끝나버리는 반팔보다 손목까지 떨어지는 옷을 입고 싶다. 면도 좋고, 캐시미어도 좋고 울도 멋지다. 면으로만 된 옷을 입을 수밖에 없는 여름과는 차원이 다르다. 올 겨울엔 파란색 니트에 회색 재킷을 입고 그 위에 코트를 덧입겠다고 생각한다. 계절에 맞지 않는 두툼한 니트가 가장 더울 무렵 집 앞에 도착한다.
그렇다고 내가 매해 여름과 겨울, 아무짝에 쓸모없는 상상을 하며 시간을 죽였는가 하면 또 그렇지 않다. 한겨울에 반팔 입는 상상을 하고, 한여름에 코트를 입을 생각을 하느라 난 영하 한파를 견디고 쪄죽을 듯한 혹서기를 버텼다. ‘이 또한 지나가리’ 하며 겨드랑이에 찬 땀을 닦으면서도 두툼한 니트를 입고 싶다고 생각하고, 패딩 속을 파고드는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면서도 반팔 입고 땀 흘리는 날이 있었노라 기억해낸다.
여름을 견디며 겨울을 생각하고, 겨울을 버티며 여름을 떠올리기 때문에 삶은 다채롭다. 그리고 여름과 겨울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즉, 우리 삶은 끊임없이 다채로울 수 있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