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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lucia Dec 19. 2020

사망신고, 상속등기

아파트 집주인이 되었다.

사망신고를 하고 왔다. 그전에, 사망신고를 하면 모든 금융계좌가 정지되므로, 혹시나 카드대금이나 다른 요금들이 연체될 수 있다. 엄마의 카드값을 먼저 선결제하고, 핸드폰 요금, 인터넷 요금, 도시가스 요금 등의 결제계좌를 변경해놓았다. 사망신고는 매우 간단했다. 사망진단서를 구청에 내면, 금방이었다. 엄마는 이제, 산 사람이 아닌 망자로 서류에 적힌다.    

 

엄마의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엄마가 떠나고 남동생이 혼자 지내고 있는 엄마의 집을, 남동생은 어차피 내년 상반기쯤에는 결혼도 할 것이고 하니, 이제 슬슬 내놔야 할 때가 되었다. 작년에 엄마가 살았던 다가구주택을 처분해주신 중개사님께 매매를 맡겼다. 좋은 값에 잘 팔아드리겠다 하셨다.     


매매거래를 하려면 상속등기를 마쳐야 한다.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발급하면 엄마 이름의 명의로 되어있다. 상속을 받았으니 상속등기를 하고, 취득세를 납부하고, 부동산 등기부등본에 우리 4자녀의 공동명의로 변경이 되어야 매매거래를 할 수 있다. 법무사 사무실을 알아볼까 하였으나, 서류 발급하고, 구청, 등기소 등을 다녀야 되는 발품이 들뿐, 난이도가 높은 행정업무는 아닌지라, 직접 셀프등기에 도전했다. 아침 9시에 집을 나서서, 구청에 가서 서류 발급을 하고, 취득세 납부까지 마치고 나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서류 발급받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자녀가 4명인지라, 각각의 위임장을 다 적고, 주민등록 초본과 가족관계 증명서를 모두 발급받고, 엄마의 제적등본 등등의 서류를 발급받는 게 한참 걸리는 일이었다. 점심은 간단히 우유 하나 사서 마시고 등기소로 이동했다. 요즘은 워낙 셀프등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등기업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고, 서류작성을 도와주는 전담직원들이 따로 있었다. 농협은행에서 국민채권 발행하는 업무도 행원들이 친절히 도와주었다. 어려움은 딱히 없었다. 기다리고, 반복해서 적고, 기다리다 보니 내 차례가 되었고, 등기접수를 마쳤다. 접수증을 받고 집에 돌아오니 4시쯤 되었다.  

  

며칠 뒤, 대법원 인터넷등기소에서 열람해보니, 등기가 완료되어있었다. 우리나라의 행정업무 처리 속도는 정말이지, 훌륭한듯하다. 부동산 등기부등본의 권리자란에 우리 4자녀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다. 엄마는 손 많이 가고, 신경 쓸 일 많은 다가구주택을 처분하고, 아파트에서 살아보는 걸 늘 소망하셨었는데, 고작 1년도 안되어 그 소망하던 아파트를 우리에게 넘겨주게 되셨다. 엄마 덕분에, 이 치열한 부동산 경기 속에서, 서울에, 아파트를 가지게 되었다. 우린 4명 모두, 아직 집이 없다. 공동명의이긴 하나, 우리 4자녀는 모두 유주택자가 되었다. 엄마 덕분에, 아파트 집주인이 되었다. 감지덕지하다.      


억대의 아파트 집주인이 되면 무엇하나, 엄마가 없는데.    

  

예전에 같은 회사를 다니며 친하게 지냈던, 나보다 몇 살 많은 아는 언니가 있다. 그 언니도 작년 가을쯤, 길지 않은 투병 끝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언니는 아빠를 어렸을 때 먼저 보낸 터라, 어머니의 부재가 더욱 큰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언니는 많이 울었다. 언니의 엄마를 보낸 지 1년쯤 되었는데도, 전혀, 그리움이나 절절함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했다. 더 짙어지고, 깊어진다 했다. 언니는 눈물을 떨구다,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근데 우리, 이제 상속녀 됐잖아. 그거라도 위안 삼고 살자.’라고 말했다. 그래. 언니 말처럼, 나는 이제 상속녀가 되었고, 아파트 집주인이 되었다. 전혀 위안될 리 없지만, 그거라도 위안 삼아보자는 언니의 말이, 더 가슴 아팠다. 더 슬펐다.     


아파트 따위 없어도 되니,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예전의, 작고 비좁은 식당에 딸린 다락방에 살아도 되니, 월세방에 살고, 옥탑방에 살아도 되니,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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