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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lucia Dec 23. 2020

파마하러 가는 길

파마한 지 너무 오래되었다. 머리를 자주 하진 않지만, 그래도 1년에 한 번씩은 펌을 하는데, 작년 1월에 하고, 1년 반도 지나 가을이 되었는데, 여태 머리를 못하고 있었다. 올해 초에 했어야 했는데, 엄마 병간호에, 코로나가 무섭기도 하고, 물리적 시간이 없기보다는, 2~3시간 펌 하고 앉아있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게 맞는 것 같다. 오랜만에, 다니던 미용실에 예약을 하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자마자, 아차. 싶었다. 내가 다니던 미용실은, 예전에 내가 살던 동네, 엄마와 같이 살던 동네, 엄마가 다니던 병원 근처에 있다. 이사를 했으나, 미용실을 옮기는 건, 여자들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심사숙고해서 옮겨야 하는데, 아직 이사한 동네에 미용실을 알아보지 못했다. 별생각 없이 예약을 하고 집을 나섰는데, 지하철을 타고나서부터, 눈물이 났다.     


엄마를 만나러 늘 가던 길이었다. 엄마의 병원에 가던 길이다. 나는 엄마의 병원에 매일 가기도 하고, 평일 5일 동안 적어도 2~3번은 갔었다. 남편이 출근하면, 나도 씻고, 적당히 집안일을 해놓고, 오전 중에 집을 나섰다. 엄마가 사 오라는 간식거리, 과일이나 간단한 야채들을 사서, 지하철을 타고, 내리고,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정류장 앞에 있는, 엄마가 좋아하는 갓 구운 카스텔라, 딸기 라떼, 가끔은 카페라떼, 나의 점심거리로 먹을 김밥이나, 유부초밥 등을 사서, 버스를 타고, 내리고, 엄마의 병원으로 갔었다. 엄마가 떠난 뒤, 한 달 반 동안, 자주 엄마의 집을 오갔으나, 나 혼자, 예전에 엄마를 만나러 갔던 그 길로,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걸어서, 가본 적은 처음이었다. 엄마 생각이 너무 많이 났다. 지하철을 탄 뒤, 엄마에게 지하철 탔다고, 금방 도착한다고 연락드리면, 오늘은 따끈한 라떼가 먹고 싶다. 무슨 과자가 먹고 싶다. 토마토, 키위, 오이, 등등을 말씀하시며, 조심히 오너라. 하시던 엄마. 분명 똑같은 카페에서 사갔는데, 어떤 날은 라떼가 맛있다 하셨으면서, 어떤 날은 라떼가 너무 달다 하셨던 엄마. 며칠 동안 당 수치가 높아 오늘은 라떼 안 사가겠다고 하면, 어린아이처럼, 새침해하시던 엄마의 목소리도 생각났다. 그렇게 늘 지하철에서 엄마와 통화했었는데, 이제 엄마와 통화할 수 없구나. 그때의 그 카페와 빵집, 편의점, 분식집들을 지나며, 마음에 파도가 쳤다. 그렇게 가던 길의 끝에는 늘 엄마의 병원이 있었고, 암병동 8층 몇 호실에 엄마가 있었는데, 이제 나는 저 병원에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가도 엄마는 없구나. 엄마가 떠나고, 한 달 반 만에 이곳을, 이 길을 오면서, 나는, 내내 엄마 생각에 찔끔찔끔 눈물을 흘렸다.   

   

3시간 동안 파마를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나의 집으로 돌아간다. 엄마의 병원에서 엄마와 점심 먹고, 수다 떨고, 엄마의 약들을 살펴보고, 엄마의 당 수치, 혈액수치 등을 확인하고, 담당교수가 회진 오면 엄마의 상태에 대해 함께 듣고, 그리고 난 뒤, 저녁 전에 엄마 병원을 나섰었다. 걷고,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집에 돌아갈 때면, 아픈 엄마를 병원에 혼자 두고 가는 마음이, 영 편치 않았었다. 좀 더 다정히 말할걸, 통증 때문에 아파하는 엄마에게 좀만 참아보라고 채근하지 말걸, 이런 마음들로 집에 가는 길이 내내 편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집에가는 길엔, 엄마에게 잘 가고 있다고, 집에 가서 연락하겠다고 문자 드리며 가곤 했었는데, 이제 엄마가 없구나. 이제 더는 엄마의 병에 대해 걱정할 일도, 답답해할 일도, 담당교수가 이런이런 말을 했다며 언니들, 동생과 상의하고 결정할 일도 없건만, 엄마가 너무 그리웠다. 더는 엄마를 만나러 가고, 만나고 돌아올 수 없음이, 너무나 버겁고, 아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집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펑펑 울었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      


이제 그 미용실에는 가지 못할 것 같다. 이 동네에 새 미용실을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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