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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lucia Jan 22. 2021

5분의 1 기부 - 1

신부님께 드리는 편지

박** 안드레아 신부님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9월 7일 선종하신 우** 모니카의 셋째 딸 김** 루치아입니다. 어머니는 백혈병으로 인한 면역력 저하로 폐렴이 급격히 악화되어, 할딱거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통 중에 돌아가셨습니다. 선종하시기 3일 전쯤, 쌕쌕거리는, 듣기조차 버거운 그 숨소리로, 어머니는 ‘5분의 1’이라고 겨우겨우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백혈병 투병 중에 종종 기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정확한 액수나 기부처를 특정하지 않으셨을 뿐, 저희 자녀들에게 늘 말씀하셨었고, 저희 모두 유념하고 있었습니다. ‘5분의 1’이라는 말의 의미는, 저희 자녀가 4명인데, 유산을 5분의 1로 나누어 그만큼을 기부하고, 나머지를 나눠 가지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혹시나 불안해하실까 싶어, 종이에 ‘5분의 1’이라고 받아 적었습니다. 어디에 기부할까. 물으니 어머니는 ‘신부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박** 신부님?’이라고 제가 되물으니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저는 종이에 박** 신부님, 백혈병 환우들, 아이들, 이렇게 받아 적으며, 어머니와 정확히 소통하였습니다. 이제 저희 4명의 자녀는 어머니의 뜻을 실행하려 합니다.     


어머니는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했습니다. 일찍이 아버지와 이혼한 후, 어머니는 홀로 4남매를 키우셨습니다. 20년쯤 장사를 하며 딸 셋을 다 시집보내고, 이제는 돈 걱정 없이 소일거리나 하고, 성당 봉사 활동하며 편히 살 수 있는 날이 드디어 왔건만, 그런 호사스러운 시절을 고작 몇 해 지내시다가, 2015년, 유방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그때의 그 절망감과 항암의 고통은, 단어 몇 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꼬박 1년 동안 어머니는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담대히 해내셨고, 1년 뒤, 어머니의 머리엔 유난히 까맣고 힘 있는 머리카락이 자라났습니다. 그렇게 쾌차하시어 또 몇 해를 자녀들과 귀한 시간 보내고, 여행도 많이 다니시고, 성당 활동도 더 열심히 하셨었는데, 어머니는 다시, 2019년 12월 24일, 백혈병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유방암 때의 항암치료 부작용이었습니다. 항암약은 어머니 몸의 건강한 조혈造血세포들 마저 많이 죽였나 봅니다. 2019년 연말과 2020년 새해를 병원에서 맞이하셨고, 고작 9개월 남짓한 투병 끝에 선종하셨습니다.     


저희는 어머니의 기부 사실을 주변에 숨기지 않을 생각입니다. 어머니는 소란 떨고 부산스러운 것을 싫어하셨으나, 저희는 어머니의 이 선행을 알리고자 합니다. 어머니가 일구신 재산으로 저희 자녀들이 생색내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저희는, 어머니의 선행을 통해, 어머니의 삶이, 절절했던 신앙이, 희생과 봉사의 마음, 진심으로 이웃을 사랑했던 자비의 마음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오래 기억될 수 있길 바랍니다. 어머니의 육신은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어머니의 선행을 우리 마음속에 기억하며, 우리 안에 어머니가 영원히 사실 수 있길, 소망해봅니다.      


5분의 1만큼의 유산은, 신부님과 다른 재단에 나누어 기부할 계획입니다. 저희가 드리는 기부액은 이문동 성당에서 하시는 여러 자선활동에 작은 보탬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작고 알려지지 않아, 일반 신자들이 알기 어려운, 도움이 절실한 단체들도 많이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런 단체들에 쓰여도 좋을 듯합니다. 신부님께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매일매일, 어머니 없는 삶에 익숙해지려 애쓰며 살고 있습니다. 언제쯤 익숙해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가 떠나신 후, 엄마가 너무 보고 싶고 그리워 몹쓸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어머니의 짐을 정리하고, 어머니의 70년생을 정리하며, 어머니와의 시간을 가슴에 새기고 기억합니다. 저희 4명의 자녀들 모두, 어머니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게, ‘모니카가 자식들 참 잘 키웠네’라는 말을 어머니 영전에 바칠 수 있도록, 잘 살아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20년 12월, 어머니와의 마지막 한해를 기억하며, 

김** 가브리엘라, 김** 미카엘라, 김** 루치아, 김** 세례자 요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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