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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lucia Jan 26. 2021

5분의 1 기부 - 2

엄마가 생전에 지내시던 아파트를 부동산에 내놓았고, 매수자가 나타났다. 계약을 했고, 계약금과 중도금을 받았다. 우리에게 목돈이 생겼다. 상속세 신고 준비를 위해 세무사 상담을 받았고, 엄마가 임종 전에 말씀하셨던 유언을 실행에 옮길 때가 왔다.     


엄마는 생전에 다니시던 성당의 주임신부님을 참 좋아하셨다. 주임신부님은 천주교 사제들 사이에서도 특별히 더 환경에 관심이 많은 분이셨다, 가난한 자를 마음 아파하시고, 부유한 자를 채근하셨던, 신부님들 중에서도 성직자스러운 면모가 많이 풍기는 신부님이셨다. 강론 시간에 하시던 말씀들과 성당 내에서 작게 실천하던 여러 가지 운동들은 성당 신자의 큰 영역인 중장년 여성들의 생활습관을 많이 바꿔놓았다. 다소 무지했던 그들에게 태양광 태양열에 대해 설명하셨고, 종이컵과 빨대가 지구를 더럽히고 있다는 것, 나이 든 사람들이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 등을 자주 전하셨다.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 미혼모와 장애인 등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으셨고, 그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하셨었다. 엄마 또래의 신자들은 처음엔 그런 이야기만 늘어놓으시는 신부님이 다소 공감되지 않았으나, 점점 신부님의 진정성에 마음이 열린 듯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신부님이 이렇게 하라고 하셨다. 신부님이 이렇게 하는 거라고 하셨다.라는 말씀을 은연중에 자주 하셨다. 


그러다 엄마는, 백혈병 투병을 하게 되었고, 언제인가, 우리에게 장지를 미리 예약해두라 하시고, 수의를 맞췄으면 좋겠다 하시던 그 무렵쯤에, 유산을 기부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신부님께 기부를 하면, 아주 알차게,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잘 쓰실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이 엄마가 그저 지나가는 말로, 가벼이 생각하고 하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엄마는 마지막 순간이 오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얼마쯤은 기부를 하시겠구나. 우린 모두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 무렵, 엄마는 나에게 본인의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셨다. 그때의 엄마의 그 눈짓과 고갯짓을 나는 잊지 못한다. 나의 인생에 있어 오래오래 남을, 나의 마지막 순간에도 기억에 남을 장면이다. 그날의 엄마의 뜻을, 우리는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신부님을 찾아가 면담을 하였다. 엄마의 뜻을 전했다. 말로는 다 전하지 못할 것 같아, 엄마의 생애를 간략히 적고, 어디에 쓰였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적어, 편지를 전달해드렸다. 감사히 잘 쓰시겠다 하셨다. 성당 말고 다른 단체에도 기부를 진행하였다. 요즘엔 고액기부자 클럽이 따로 있고, 담당자도 따로 있다. 유산기부 의사를 밝히면, 단체에서 어떤 사업을 진행하는지 설명해주고, 어디에 쓰길 원하시냐 물어보며, 사업계획서도 만들어 보내준다. 매우 친절히 응대해준다. 엄마가 모은 돈을, 엄마가 떠나고 우리가 쓰는 것인데, 그 공덕과 그 감사와 그 극진한 대우를 엄마는 못 받고 우리가 받는다. 황망하고 황송할 따름이다.      


엄마와 지내던 어느 날인가. 퇴근하고 집에 가보니, 이불을 정돈하고 계셨다. 깨끗한 이불을 골라, 솜을 틀고, 홑청을 새것으로 씌우고, 무슨 새색시 시집보내는 친정엄마가 하듯, 정갈하고, 정성스럽게 이불과 요 한 세트를 정돈하고 계셨다. 뭐에 쓰는 것이냐고, 내 방에 새로 깔아 줄 것이냐고 물어보니, 꿈도 꾸지 말라며 웃으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웃에, 성당 다니는 할머니 댁에 가져다 드릴 것이었다. 조금은 형편이 어려운 듯한, 엄마의 엄마 벌은 돼 보이는, 할머니의 댁에 쓰일 이불이었다. 살림이 넉넉지 못한 할머니들은 한겨울에도 보일러 값 아낀다고, 전기세 아낀다고, 난방을 제대로 하지 않고 지내시는 경우가 많다. 자식들이 용돈을 안 주나, 생활비를 안 보내주나 싶지만, 그분들에게는 뜨듯한 방에서 자고 뜨듯한 물로 씻는 것이 익숙지 않고 편치 않으신 것이리라. 그분들에게 난방 꼭 하시라고 아무리 돈을 쥐어 줘도, 그분들은 난방을 하지 않고, 그 돈을 모아 다른데 쓰실 뿐이다. 그런 할머니에게 엄마는 이불과 요 한 채를 가져다주셨다. 난방을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온기를 유지할 수 있는 따듯하고 포근한 이불이, 그분들에겐 퍽 요긴한 살림살이라는 것을, 엄마는 잘 알고 계신 듯했다. 


그렇다. 엄마는 그분들의 그런 마음까지 헤아려, 돈보다는, 이불을 새로 정비하여 무겁게 가지고 가 정성스럽게 깔아 드릴만큼, 생각이 깊고 따듯한 사람이었다. 넉넉지 않은 삶을 사느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고, 목구멍이 포도청인 자식들이 넷이나 있었을 뿐, 엄마는 분명, 분명, 따듯한 사람이었다. 그것을 나는 안다. 우리 자녀들은 안다.      


엄마의 기부로 누군가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면, 그 누군가의 마음도 따듯해질 수 있겠지. 그 따듯해진 마음으로,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키는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엄마의 선행善行이 흐르고 흘러, 또 다른 선善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길 바란다.     


우리 4남매에게 모아진 황송하기 그지없는 감사 인사들은, 모두, 엄마의 영전에 바친다.      


엄마, 고마워.

엄마 덕분에 우리가 엄청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었어.

잘 살게. 엄마처럼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따듯한 사람, 옳고 바른 사람으로, 잘 살게. 

엄마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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