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치아 lucia Sep 10. 2021

모니카 Monica


나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표현보다 싫어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여름날의 그 강렬한 햇빛, 밤에도 이어지는 열대야, 숨쉬기도 버거운 후끈한 공기, 조금만 걸어도 가슴 밑이 흥건해지는 땀, 모기와 벌레들 등등, ‘여름’하면 생각나는 모든 것들을 나는 싫어한다. 바닷가 해수욕장이나, 워터파크 물놀이 등도 그다지 재미를 못 느끼는 지라, 도무지 여름을 좋아할 만한 구석이 나에겐 단 한 개도 없다. 게다가 나는 20살 적부터 알레르기 비염을 달고 살았다. 사무실에서 풀가동되던 에어컨 바람은 봄철 황사보다 더한 콧물을 나에게 선물해주었고, 한여름에도 꼬박꼬박 신어야 했던 커피색 스타킹은 갑옷 같았다. 여러모로 난 여름이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여름의 끝을 알리는 입추立秋와 말복末伏은 나에게 참으로 반가운 절기節氣였다. 사무실 에어컨 바람과 커피색 스타킹에서 벗어난 지금도 폭염의 끝을 알리는 반가운 절기는, 한여름날 솜에 젖은 듯 무겁게 움츠리고 있던 나의 몸을 일으켜 주고, 움직이게 했다.

올해는 유난히 폭염이 어마어마했다. 7월 한 달, 35도를 가볍게 넘어주던 그 어마 무시했던 폭염은, 대체 끝나기는 할까 싶었지만, 입추가 지나고 몇 차례 비가 내리고, 말복이 지나고 나니, 선선한 바람이 불며 한풀 꺾였다. 여름 장마는 오는지 가는지 모르게 지나갔으나, ‘가을장마’라는 생소한 단어에 걸맞게 제법 많은 비가 왔다. 비가 오면서 기온은 뚝뚝 떨어졌다. 이제 한낮 더위가 30도 아래다.     

 

그런데, 이 반가운 절기에, 나는 심장이 아려왔다. 마음이 스산해진다. 선선한 바람이 가슴속에 쓸쓸한 기운을 몰고 왔다. 아. 그래. 그때구나. 1년 전 그때. 엄마와의 이별이 다가오던 그때가 다가오는구나.    

 

1년 전. 2020년 8월 중순, 전공의들이 파업하던 그때로구나. 병원은 텅 비어 가고, 엄마는 무리하게 퇴원을 했던, 엄마 집에서 마지막으로 엄마와 보내던 그 주말이구나. 밤에 화장실을 다녀오시다 넘어져 다시 입원을 하고, 고관절이 부러졌으나 손을 쓸 수 없었던 그때, 폐렴이 엄마의 폐를 잠식해 숨을 헐떡이며 임종을 맞이하시던 그때. 1년 전 그때가 다시 돌아왔구나.

1년 전 내가 겪었던,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이었던, 엄마의 마지막 시간이, 아주 크게, 아주 거세게, 선선해진 바람과 공기를 통해, 내 머리에서 발끝까지, 오장육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엄마와 마지막으로 주고받던 눈빛, 말, 손짓, 숨소리, 신음소리, 그 모든 것들이 아프고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이 절기節氣가 반갑지 않아 졌다. 선선한 바람은 반가웠으나, 나는 자주 잠을 설쳤다. 한동안 그러지 않았는데, 잠결에 찔끔찔끔 훌쩍대는 울음에 다시 남편을 단잠을 깨우게 되었다.      


엄마의 축일이 다가왔다. 모니카 Monica 성녀의 축일은 8월 27일이다. 작년 엄마의 축일에, 엄마는 의식이 있으셨다. 아주 조금이지만 식사를 하실만한 기력이 아직은 있으셨다. 극심한 고통 중에 가끔 헛소리를 하기도 하셨으나, 우리와 통화를 하실 수 있는 정도였다. 엄마의 많은 지인들이 엄마의 축일을 축하하는 문자를 보내왔었다. ‘엄마 힘내. 모니카 성녀님이 엄마를 도와주실 거야. 엄마 조금만 힘내.’ 그렇게 말하며 엄마의 머리를 쓸어드렸다. 엄마는 그때 얼마나 힘드셨을까. 도무지 힘이 나지 않는데, 이제 점점 숨이 꺼져가고 있는데, 힘내라는 말만 하는 지인들과 자식들의 말이 애석하지는 않으셨을까. 엄마는 그때, 얼마나 많이, 아팠을까.     

엄마의 축일에, 동네 성당에 가, 엄마의 연미사를 미사예물로 넣고, 미사를 보았다. 요 근래의 내 모습이 불안했는지, 남편이 연차를 냈다. 함께 미사를 보았다.      


엄마, 잘 있어?

이제 천상에서 모니카 성녀님과 함께 있어?

나는 엄마가 너무 많이 보고 싶어. 이 뻐근한 마음도, 한 해 두 해, 십 년 이십 년이 되면,

조금 무뎌질 수 있을까?

엄마, 여름 끝에 선선한 바람과 공기가 나는 이제 너무 아프게 다가와.

엄마도 이 절기를 참 반가워했는데 말이야.

그래도 엄마, 나 잘 살아내볼게. 엄마가 너무 오래 아프지 않고 편히 갈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나도 너무 오래 미련 떨지 않고, 잘 살아내볼게.

엄마 사랑해.     


마음을 다잡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본다.

하루하루 지내고 보니, 어느새 엄마의 1주기가 다가온다.


작가의 이전글 막내의 결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