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꿈속에서만나.
엄마의 1주기가 다가왔다.
엄마는 2020년 9월 7일 새벽 4시 6분에 선종하셨다. 올해 9월 7일은 화요일인지라 편의상 그 전주 주말에 가족들과 모였다. 작년과 달리, 가족이 1명 더 늘었다. 남동생의 결혼으로 올케가 추가되었다. 늘어난 가족과 함께, 엄마의 유골이 모셔져 있는 비봉103위성인추모공원에 다녀왔다. 엄마는 잘 있는 듯했다. 1년이나 지났음에도, 나와 둘째 언니는 찔끔찔끔 눈물을 보였다. 아니, 이제 고작 1주기밖에 되지 않았구나. 앞으로 20주기, 혹은 30주기, 혹은 40주기쯤 내 생애에서 맞이하게 될 텐데, 이제 고작 1주기밖에 되지 않았구나. 그 세월들이 쌓이면, 조금은 마음이 단단해질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훌쩍거리며 미련 떨지 않을 수 있을까.
서둘러 서울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침 일찍 움직였음에도 유난히, 상경하는 길이 막힌다. 그러고 보니 추석이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미리 성묘를 나선 차량객들인가 보다. 예전보다 1.5배의 시간이 더 들어 서울로 왔다.
성당에 가서 다 같이 엄마의 연미사를 봉헌할 계획이었으나, 시국이 시국인지라, 평화방송으로 연미사를 드렸다. 함께 식사를 하고, 서로의 근황을 나누고, 간단히 가족회의도 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생전에, 제사는 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자식들 힘들까 봐 걱정하셨고, 신앙심이 깊으셨고, 허례허식을 싫어하셨다.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가고, 경건한 의식이기보다는 시집살이의 대명사가 된 제사는, 건강하셨을 때부터 늘, 원치 않으셨다. 대신, 당신의 기일에 모여, 꼭 4남매 모두 함께 미사를 드리고, 맛있는 밥 사 먹으라 하셨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TV로 미사를 드렸지만, 내년에는 꼭 성당에서 함께 미사 드릴 수 있기를, 그런 날이 꼭 다시 오길 바래본다.
1주기에 맞춰 지난주, 세이브더칠드런에서 꽃과 편지를 보내왔다. 배달 서비스가 아니라, 직접 들고 오셨다. 집에 들어오셔서 차라도 한잔하고 가셨으면 좋았을 텐데, 코로나19로 인해, 그런 자리는 애써 사양하셨다. 너무 예쁜 꽃다발이었다. 기억해주고, 추모해주어 매우 고마웠다. 엄마는 꽃을 정말 좋아하셨는데, 두고두고 입이 마르게 고마워하셨을 것 같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서도 전화가 왔다. 후원자분들 미사 때 꼭 기억하겠노라 말씀하셨다. 모두 고마운 사람들이다.
엄마의 절친 아주머니와 통화를 나누었다. 괜히 슬픔이 깊어지실까 하여 연락을 드리지 말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먼저 전화를 주셨다. 이문동 성당에 기일에 맞춰 연미사를 봉헌하시겠다고 하셨다. 잊지 않고 챙겨주시는 그 마음, 주저하는 내게 먼저 전화 주시는 그 마음이 죄송스럽고 감사했다.
주말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엄마의 기일 당일이 되었다. 요즘은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면, 백신 휴가를 이틀 준다. 둘째 언니는 백신 접종 예약을 9월 7일로 잡았고, 언니에겐 이틀 휴가가 생겼다. 아무리 주말에 가족들과 기일 예절을 치렀어도, 기일 당일을 그냥 보내기는 아쉬워, 둘째 언니와 평일 미사를 보러 갔다. 정동에 있는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엔 점심 12시 10분에 직장인들을 위한 미사가 봉헌된다. 지하 성당의 돌벽이 아름답고 구조가 독특하여 인상에 깊이 남는 성당이다. 엄마도 오래전 이 성당에 다녀간 뒤 아주 좋아하셨었다. 둘째 언니는 백신 접종을 잘 마쳤다. 혹여나 무리하면 안 되니, 택시를 타고 성당으로 가, 함께 미사를 보았다. 마음이 조금은 단단해졌다. 언니와 함께 성당 근처에서 맛있는 전복해물뚝배기를 점심으로 먹고,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집에선 부산을 떨며 바삐 시간을 보냈다. 이런 날은 부지런히 몸을 굴려야 한다. 저녁엔 남편과 근처 경의선 숲길에 있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가, 맛있는 파스타를 먹었다. 재방문 의사가 생기는, 내 입에 맞는 곳이었다. 저녁 산책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하루를 마쳤다. 훌쩍거리지 않고, 잘 잤다.
작년 엄마의 선종일에는 비가 왔다. 기억에, 태풍이 왔었던 것 같다. 새벽에 돌아가셨고, 하루 종일 장례식장 안에만 있었지만, 조문객들의 말에, 제법 비바람이 불었던 것 같다. 장례를 다 마치고, 추모관에 엄마를 모시고, 상복을 벗고 나니, 훅, 반팔 차림에 추위가 느껴졌었다. 엄마가 위독 하시자 급히 짐을 싸 엄마 집으로 왔었다. 그 짐엔 옷이 모두 반팔이었다. 엄마 옷장의 가디건을 걸쳐 입으며, 가는 여름도 함께 배웅했던 것 같다. 올해 엄마의 1주기에도 비가 왔다. 아침부터 내내 비가 왔고, 저녁 무렵 그쳤다. 그 덕에 마음이 더 가라앉았고, 더 스산했지만, 어찌어찌 하루를 잘 보냈다. 비가 오면 팔다리 쑤셔하시던 엄마 생각이 났다. 나도 이제 제법, 비가 오면 팔꿈치가 시리고, 무릎이 묵직하다. ‘젊은것이 아이고...’ 엄마가 한탄하시는 소리가 들리는듯하다.
그렇게 엄마의 1주기 기일을, 무난히, 잘 보냈다.
매일매일 엄마가 보고 싶다. 말해 무엇하랴. 안기고 싶고 만지고 싶은 엄마 품, 엄마 얼굴, 엄마 손...
하지만 이제 엄마는 눈을 감아야만 볼 수 있고, 사진 속에서만 추억할 수 있다.
그래도 엄마, 매일매일 나는 엄마를 생각해. 매일매일 나는, 엄마를 향해 하루만큼 다가가고 있어.
그러니 엄마, 그곳에선 아프지 말고, 편히 잘 있어요.
보고 싶은 나의 엄마, 우리, 꿈속에서 만나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