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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lucia Sep 14. 2022

무농약 오이, 유기농 참외

2019년 가을 무렵, 나는 마포구 용강동 근처로 이사를 왔다. 이사와 보니 내가 사는 집 아주 가까이에 ‘한살림’이 있었다. 유기농 먹거리를 파는 마트다. 근데 그때는, 오다가다 이름만 들어서 알고 있을 뿐, 한살림에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유기농 마트는 비쌀 것이라는 생각, 그 편견에, 나는 들어가 볼 엄두조차 내지 않았다.      

작년 봄쯤, 한살림 앞을 지나는데  옷을 수거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알아보고자 인터넷 홈페이지를 찾아보았다. 그러다 SNS 팔로우를 하고, 조합원 가입도 하게 되었다. 집에 있는  옷을 정리   수거함에 넣고, 우유팩도 깨끗이 씻어 수거함에 넣었다. 그러다 가게를 둘러보니 제법 살만한 가격의 먹거리들이 많았다. 물론 고기나 우유, 생선들은 시중 마트보다 2, 혹은 3배까지 비쌌으나, 상추 오이 가지 콩나물 두부 같은 먹거리들은 시중 마트와 비슷했고 심지어는  저렴하기도 했다. 유기농인데, 무농약인데, 저렴하기까지 하다니.. 나는 그때부터 한살림을 애용하기 시작했다.  

   

올봄, 여름엔 유기농 참외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물에 대충 헹구어서 껍질 그대로 먹을 수 있는 참외, 껍질이 하나도 억새지 않고, 아주 달았다. 더위가 한풀 꺾이니 포도가 나왔다. 흐르는 물에 설렁설렁 씻어먹어도 되는 무농약 포도라니. 감동이었다. 포도는 워낙 농약이 많다 하여 매번 씻고, 담가두고 또 씻어서 먹는 게 일이었는데 무농약 포도는 그런 수고로움을 훨씬 덜어주었다.      


먹다 보니 또 엄마 생각. 물 많은 여름오이를 초고추장도 필요 없이 그대로 아삭아삭 씹어 먹다, 나는 둘째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엄마한테도 유기농 오이 사다 줄 걸.’ 언니는 대답 없이 한숨만 깊이 내쉬었다.  

   

엄마는 입원 중에 늦은 봄이 되자, 나에게 마트에서 오이를 사 오라 했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면 오이가 마트에 많이 나오고 가격도 저렴하다. 엄마들은 그맘때면 오이를 대량 구매해 오이지를 만들어 놓고, 오이소박이 김치를 담근다. 물이 많으면서도, 아삭하니, 오이 맛이 최고가 되는 그 시기를 엄마는 기억하고 있었겠지. 엄마의 병원에 갈 때면 나는 늘, 3개 혹은 5개가 들은 오이 한봉다리를 사 가지고 갔었다. 엄마는 대충 오이를 씻어서, 얇게 껍질을 벗긴 생 오이를 아주 맛있게 드셨다. 맨입에 고추장도 없이 그 오이가 뭐가 그렇게 맛있냐 물으면, 아주 맛있고 개운하다 하셨다.


그때 한살림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한번 들어가 볼걸, 엄마에게도 유기농 오이를 사다 줄 걸. 시중 마트보다 2배 3배가 비싸더라도, 유기농 우유, 고기, 생선 그런 거 좀 사줘볼걸. 하나도 아깝지 않은데. 그때는 왜 그 생각도 못하고 살았을까. 길 건너 3분이면 갈 수 있는 한살림이었는데. 뒤늦은 후회다.     


둘째 언니가 유난히 두통이 심하고, 빈혈기가 있어 한동안 고생이었다. 1년에 한 번씩 회사에서 건강검진을 하는데, 이때까지는 유심히 보지 않고 넘겨버렸던 혈액수치를 자세히 살펴보니, 매우 낮은 편이었다. 백혈구, 적혈구, 호중구, 이런 수치들이 모두 낮았다. 예를 들어 4~10이 정상수치라면 언니는 4에도 못 미치는 3점 몇이었다. 하지만 딱히 병은 아니라고 한다. 그래도 빈혈이 있고 두통이 심한데.. 우린 덜컥 겁이 났다. 둘째 언니는 주변 친구에게 몸이 이렇다는 걸 이야기하니 친구가 흑염소를 권해주었다고 한다. 한살림 흑염소가 아주 진하고 좋다고. 둘째 언니는 한달음에 우리 동네 한살림으로 와서 흑염소 3박스를 사 가지고 갔다.

흑염소가 정말 언니 몸에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언니 나이도, 내 나이도, 이런 보약을 챙겨 먹을 나이가 된 것 같다.   

  

엄마는 유난히 이런 보양식을 챙겨 드시지 않으셨다. 가난했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뒤로도, 보약이나 보양식에 돈을 쓸 생각을 못해보고 살았던 거다. 그 덕에 우리 자녀들도 흔한 영양제도 잘 챙겨 먹을 줄 몰랐다. 남들이 먹으니 그제야 비타민도 먹고 유산균도 먹지만, 제법 값이 나가는 보양식, 보약은 뭐가 몸에 좋고 뭐가 여자에게 좋고 그런 정보가 잘 없었다. 그런 것들이 필요할 만큼 몸이 부실하지 않았기도 했겠지만, 찾아보고 알아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런 것들은 엄마도 우리도, 잘 모르고 살았다.     


이제 딸들이 나이가 들어 이런 것도 알아보고, 흑염소를 3박스씩 쟁여놓고 먹을 만큼 어느 정도의 돈도 있는데, 엄마에게도 흑염소 3박스, 아니 10박스도 사줄 수 있는데, 이제 엄마가 없다. 흑염소가 아니라 녹용도 사줄 수 있고, 그렇게 좋다는 공진단도 사줄 수 있는데, 엄마가 없네. 엄마가 없다.     


둘째 언니는 흑염소와 철분제를 꾸준히 먹더니, 두통이 제법 많이 좋아졌다. 나도 고생하기 전에 미리미리 먹어두라는 말에, 아끼지 않고 내 것도 사두었다. 좋다는 프로폴리스도 찾아서 먹고, 비타민D도 챙겨서 먹는다. 내 나이부터 미리미리 챙겨 먹으면 엄마처럼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 내 나이, 둘째 언니의 나이부터 엄마도 좋은 거 챙겨 먹었더라면, 그렇게 무릎이 닳고 손가락 마디가 휘도록 일만 하지 말고 몸을 먼저 챙겼더라면, 엄마는 지금 딸들과 같이 유기농 포도 먹을 수 있었을까.     


오늘도 여전히 나는 이렇게 부질없는 생각뿐이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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