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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lucia Apr 28. 2023

시간의 축적

=쌓이다.

어느 날, 멀쩡하던 TV가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몰입하여 드라마를 감상하고 있었는데, 마치 나이트클럽 조명이 번쩍이듯, TV 화면이 번쩍거렸다. 번.. 쩍..이다가 번쩍번쩍번쩍 거리기도 했고, 반짝반짝 반짝반짝 반짝반짝 반짝반짝 거리기도 했다. 서비스센터에 문의해 보니 전문수리기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용하신 지 오래되어 액정 관련한 부품이 고장 난 것 같다고 말하였다. 부품 값을 생각하면 수리보다는 교체를 권한다는 말을 남기시고 통화를 마쳤다. 그 후로는 갑자기 또 멀쩡해졌다가, 다시 또 번쩍, 거렸다가. 또 멀쩡해졌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결혼 10주년이 지났다는 것은, 우리 집에 있는 모든 가전, 가구, 집기들을 사용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냉장고는 2~3년 전쯤, 엄청나게 큰 팬소음이 발생하여 부품교체를 하였고, 세탁기는 4년 전, 통교체를 깔끔하게 마쳐 아직 매우 쓸만한 새삥축에 속한다. 전자레인지는 올해 손을 한번 보았고, 밥솥은 남편이 자취시절부터 쓴 오오오오오래된 밥솥이라 이참에 폐기해 버렸다.

가구들은 아직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10년 전에 구매할 때는 그렇게 이름난 브랜드가 아니었는데, 지금은 현빈소파가 되어 TV광고에서도 볼 수 있는 자코* 소파는 가죽 색도 그대로고 흠집도 없이 상태가 매우 훌륭하다. 옷장, 식탁, 남편이 남는 나무로 적당히 만들어놓은 TV장, 침대 등은 앞으로 10년을 더 써도 충분할 만큼 튼튼하다.

엄마와 큰언니가 본인들이 쓰던 주방 살림 중 실사용 5회 미만의 물건들을 골라서 주었던 그릇, 물컵, 수저세트 등도 아주 잘 쓰고 있다. 유리반찬통 락앤* 글라스도 고무패킹에 색배임 하나 없이 비교적 깨끗하다. ‘내가 살림을 알뜰히 잘했구나’ 새삼 대견하기도 하다.     


결혼하자마자 그 해에 시할머니의 장례를 치렀고, 3년 전 나의 엄마, 작년 나의 아버지 장례를 치렀다. 우리가 결혼한 그다음 해에 태어난 둘째 언니의 아들은 올해 10살이 되어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시어머니의 환갑, 시아버지의 칠순을 지냈고, 내 남동생이 결혼하여 올케가 생겼다.

3번의 이사를 거쳐 우리는 내집마련을 했다. 남편은 직장생활을 충실히 하고있고, 나는 지금 백수생활을 만끽 중이다.

남편과 나는 생의 희로애락, 그 모든 순간을 함께하고 있다.     


나와 남편은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고, 작은 일도 상의를 많이 한다. 하다못해 1만원 미만 하는 HDMI 케이블을 구매할 때도 서로 필요한지 이야기한다. 남편이 회사에서 구해올 수도 있고, ‘수납장 어딘가에서 본 거 같은데’하면서 같이 찾아볼 수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소소한 것까지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아이 없이 살다 보니 서로를 자식 대하듯 하기도 한다. 똥만 싸도 이쁜 게 자식이라던데, 우리는 서로를 예뻐하고, 안쓰러워하고, 사랑스럽게 보려고 노력한다. 관계는 반드시 노력하고 애써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시간은 ‘흐른다’라고 표현한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개념이다. 어제는 지났고 지금은 현재이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1분 전은 이미 지났고 사라졌다. 오직 지금 현재뿐이다.

물리학적으로는 맞는 말이겠지만, 나에게 시간은 ‘흐른다’라고 표현할 수만은 없는 것 같다.

시간은 쌓.인.다. 남편과 나는 10년이라는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 지금이 되었다. 2013년.. 2015년..... 2023년 한 해 한 해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쌓인 것이다.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우리가 있다.    

  

나의 30년, 남편의 30년을 지나, 부부로 10년을 살았다. 앞으로 우리가 얼마큼의 시간을 더 쌓게 될지 모르겠지만, 또 얼마나 많은 삶의 굴곡들을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함께하는 동안은 꼭 함.께. 이길.

몸뚱이만이 아니라 마음도 온전히 함.께. 같이 할 수 있기를, 나는 바란다.       

   

나와 당신의 모든 모습, 썩어 문드러지고, 말라 비틀어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까지도 우리 함께해요.

나의 남편. 고맙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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