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눈부시게 피어오르는 봄꽃들 위로 4월의 눈이 내리기도 했으나, 기어코 봄은 오고야 말았다.
광장에도 봄이 왔다. 오래 애를 태웠으나 탄핵은 인용되었고, 심사숙고한 결정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글자 한 글자 옳은 말씀들이었다.
보수당과 진보당은 각각 경선일정으로 바쁘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번엔 6월 대선을 치르게 되었다.
3월 말 경상도 일대에는 큰 화재가 났다. 의성 울진 청송 영양 안동 등 피해지역이 매우 광범위하다. 도깨비불처럼 바람 타고 산등성이를 넘어가던 불로 인해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집을 잃고 논밭을 잃고 가축을 잃었다. 그 마음 오죽하랴. 살아있음에 감사하시라 위로하기엔 전부를 잃은 그 슬픔이 너무나 가혹하다.
재의 수요일에서 시작된 사순절, 주님 만찬 성목요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을 지나 파스카 축제의 희생 제물로 죽으셨던 예수가 부활하였다. 4월 20일, 가톨릭교회는 부활절을 맞이했다. 올해는 내가 매주 한번씩 반주봉사를 하고 있는 정동의 프란치스코교육회관 성당에서 성삼일 전례를 함께했다. 더없이 복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함께 초를 켜고 세례 서약 갱신을 되새기며 파스카 성사에 참여하는 동안, 신앙인들은 사제가 읊는 아래의 기도문을 머리와 가슴에 깊이 새긴다.
주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시작이며 마침이시고
알파이며 오메가이시고
시간도 시대도 주님의 것이오니
영광과 권능이 영원토록 주님께 있나이다. 아멘.
탄핵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고, 시끄럽고 다소 추악하기도 할 선거기간을 지나 다음 정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 역사가 고작 100년도 되지 않은 이 나라에서, 나는 대통령에게 대단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부디 탱크와 총과 칼을 내 나라 도심 한복판에 들이밀지 말라.
청와대에 부끄러운 자를 들이지 말라.
국민들은 훌륭한 지성과 드높은 문화의 힘으로 온 세계를 누비며 대한민국의 이름을 떨칠 것이니
그 앞길에, 그 뒷길에 초를 치지도 말고 재를 뿌리지도 말라.
국민들이 돌밭을 일구고 가시덤불을 헤치며 성실히 일해 길을 닦아 두었으니
그 길을 영광되이, 당당히, 멀쩡한 걸음으로 걸어오라.
이것이 어려운가. 이것이 어려워 비선실세를 청와대에 들이고
총과 칼로 무장한 국군을 국민과 대치하게 하였는가.
이것이 어려운가.
김구 선생님이 말씀하신 높은 문화의 힘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은 반드시 아름다운 나라가 될 것이니, 제발 그에 걸맞은 대통령이 되길, 바랄 뿐이다.
4월 20일 부활절,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시던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바로 다음날, 4월 21일 월요일 아침, 하느님 곁으로 가셨다. 가톨릭 교회 안에서, 부활대축일이 지난 다음날, 사제들은 엠마오를 떠난다. 신자들도 삼삼오오 피정이나 야외행사 등을 가지며 엠마오의 의미를 되새긴다. 교황님께서는 신앙인으로서, 사제로써, 가장 완벽한 엠마오를 떠나신 것 같다.
2014년 방한 당시,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하시고, 가슴에 노란 배지를 달고 계시던 교황님. 값비싼 외제차 말고, 국산차 카니발과 쏘울을 타고 신자들을 만나셨던 교황님. 그 환한 미소와 따듯한 손길을 언제나 기억하겠습니다.
Papa Francesco!! 감사했습니다. 편히 쉬세요.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이 우리 삶의 가장 큰 희망입니다. 우리는 이 가난하고, 연약하고, 상처 입은 삶을 그리스도께 의지하여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 죽음을 이기셨고, 우리의 어둠을 이기시며, 세상의 그늘까지도 이기셔서 기쁨가운데 당신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오로가 말한 우리의 목표입니다. “뒤의 것은 잊어버리고 앞의 것을 향하여 달려”(필립 3,13-14) 나아가는 것이지요. 마리아 막달레나, 베드로, 요한처럼 우리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향해 달려갑시다.
- 2025년 4월 20일 부활 대축일 낮 미사, 프란치스코 교종의 마지막 강론
고단하고 가혹했던 겨울을 지나 봄이 왔다. 지난가을, 수북했던 낙엽은 그대로 땅의 밑거름이 되었다. 겨울 동안 얼고 녹고 비와 눈을 온전히 맞으며 단단히 굳어진 땅은, 이 봄 새싹을 돋게 했다. 우리는 어둠을 지나 빛을 맞이했고, 앞으로 앞으로 쉬지 않고 나아갈 것이며, 지혜롭게 새 대통령을 맞이할 것이다.
‘뒤의 것은 잊어버리고 앞의 것을 향하여’ 2025년 이 봄을, 잘 살아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