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by 루치아 lucia

오래 걸렸다.


작년 겨울, 탄핵정국의 차디찬 회오리바람 속에서, 대한민국 국민에게 봄바람 춘풍처럼 달콤하고 따듯한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시상식이었다. 유럽의 낯선 땅, 시상식장 무대에 오른 단 한 명의 여성 수상자 한강 작가. 감동스럽고 자랑스러운 마음에 목이 메었다. 국가원수라는 사람이 하는 짓이 너무나 낯부끄럽기 짝이 없어 고개를 들 수가 없었는데, 그런 대한민국 국민에게 한강 작가는 김구 선생님이 말씀하신 ‘높은 문화의 힘’으로 자랑스럽게 어깨를 펼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2017년,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어보았다. 당시 다니던 회사는 분위기가 자유로워 업무시간에도 여유 있을 때 독서를 하는 분들이 더러 있었는데, 나 역시 회사에서 짬짬이 책을 읽었었다. 그때 내가 읽었던 <채식주의자>는 충격이었고 읽기 매우 불편한 내용이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오만가지 인상을 쓰고 책을 읽던 내 모습을 보신 사장님이 지나가시며 ‘무슨 책을 읽는데 표정이 왜 그래’하시며 책표지를 쓱 보고 가시던 기억이 난다. ‘내용이 참 어렵고 불편하네요’ 나의 대답은 그러했다. 그래도 끝까지 다 읽었다.


한강 작가의 작품들은 그렇게 내용이 쉬이 읽히지 않는다. 그래도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니 당연히 사서 읽어야지. 생각했지만, 미루고 미뤘다. 수상 당시에는 책 구하기가 어려워 몇 달 지나서 사야겠구나. 생각했고, 몇 달 뒤에는, 인터넷 서점에서 구입해 놓고 책꽂이에 전시만 해두었다. 그러다 어제, 드디어, 기어코, 첫 장을 펼쳤고, 밤늦은 시각까지, 한숨에, 마지막 장을 끝냈다.


첫 장부터 역시나 감정이 휘몰아쳤다. 너무 아프고 기막힌 이 이야기를, 나는 어떻게 삼켜야 하는가. 일렁이는 마음을 다독이며, 눈물이 흐르면 닦고, 화가 나면 욕을 하기도 하며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겼다. 하지만 기어코 나는 무너졌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 만발이었다는 것을.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발씩 죽음을 박아 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

이 구절을 읽었을 때 나는 펑펑 울었다.

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전쟁통에 적군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잖아. 국민이잖아. 그 도시를 전멸시키려고 온 거잖아. 어떻게 팔십만 발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어떻게.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글을 읽어나갔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이 모두 팔십 만발 이었다는 것을. 그때 그 도시의 인구가 사십만이었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사람들의 몸에 두발씩 죽음을 박아 넣을 수 있는 탄환이 지급되었던 겁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 있었을 거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학생 대표의 말대로 우리가 총기를 도청 로비에 쌓아놓고 깨끗이 철수했다면, 그들은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눴을지도 모릅니다. 그 새벽 캄캄한 도청 계단을 따라 글자 그대로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던 피가 떠오를 때마다 생각합니다. 그건 그들만의 죽음이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들을 대신한 거였다고. 수천곱절의 죽음, 수천곱절의 피였다고. -117,118쪽


누군가의 죽음들을 대신한 그들의 죽음. 그들이 지켜온 광주. 그들이 지켜온 대한민국.

고작 이 책을 읽는 것이 불편하여, 몇 달을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읽어보는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이 책도 마주하지 않은 채 어떻게 지금 시대를 떳떳이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외면하고 잊어버리기에는, 그들이 대신한 수천곱절의 죽음과 수천곱절의 피가 어찌 나와 내 가족이 아닐 수 있단 말인가.


그는 흥분해 있었습니다. 한 사람씩 군화로 등을 밟아 흙바닥에 머리를 박게 하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씨팔, 내가 월남 갔다 온 사람이야. 내 손으로 죽인 베트콩 새끼들이 서른 명도 넘는다, 더러운 빨갱이 새끼들. 그때 김진수는 내 옆에 있었습니다. 장교가 김진수의 등을 밟자, 하필 자갈에 찧은 이마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다섯 명의 어린 학생들이 이층에서 두 손을 들고 내려온 것은 그때였습니다. 계엄군이 대낮같이 조명탄을 밝히며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했을 때 내가 소회의실 캐비닛에 숨으라고 명령했던 네 명의 고등학생과, 소파에서 김진수와 짧은 실랑이를 벌였던 중학생이었습니다. 더 이상 총소리가 들리지 않자 그들은 김진수의 말대로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러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저 새끼들 봐라, 김진수의 등을 밟고 있던 장교가 여전히 흥분한 채 소리쳤습니다. 씨팔 빨갱이들, 항복이다 이거냐? 목숨은 아깝다 이거냐? 한 발을 여전히 김진수의 등에 올린 채 그는 M16을 들어 조준했습니다. 망설이지 않고 학생들에게 총을 갈겼습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봤습니다. 씨팔, 존나 영화 같지 않냐. 치열이 고른 이를 드러내며 그가 부하를 향해 말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사진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있는 건, 이렇게 가지런히 옮겨놓은 게 아닙니다. 한 줄로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시킨 대로 두 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133쪽


지난 3월 초, 남편과 짧게 1박 2일 일정으로 광주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전일빌딩에 걸려있던 현수막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광주가 지켜온 민주주의에 내란선동의 자유는 없습니다.>

전일빌딩 내부에 마련된 전시관을 둘러보고 총탄자국을 들여다보며 나는, 전시물들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끝까지 읽어 내려가지 못해, 중간중간 의자에 앉아 한숨을 쉬고 멍하게 창밖을 바라봤었다. <소년이 온다> 책을 읽으며, 내가 3월에 걸었던 금남로에 대체 얼마나 많은 피들이 낭자해있었을지. 가늠되지 않았다. 형들이 가까스로 숨겨줬던 다섯 명 어린 학생들의 죽음, 그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가족들의 한숨과 울부짖음이 이 대한민국에 넘쳐흐른다. 도둑질할 자유, 살인할 자유, 남의 인권을 유린할 자유는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내란선동의 자유, 국군에게 국민을 죽이라고 팔십만 발의 탄환을 쥐어줄 자유는 그 어디에도 없어야 하는 거 아닌가.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동호 은숙 정대 진수 정미 영재 수없이 많은 이름들, 사람들, 그들의 부모 형제 친구 이웃 동료.

그들이 꽃핀 쪽으로 걸을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온다 해도, 그들은 과연 꽃핀 쪽으로 걸을 수 있을까.


너무나 아프고 아픈 이야기. <소년이 온다>

책을 사고, 책장에 꽂아두고, 읽고 독후감을 쓰기까지, 오래도 걸렸다.

오래 걸린 만큼, 오래 기억하고 오래 아파하겠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45주년을 기억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

꽃핀 쪽으로 서로의 손을 잡고 따스히 걸을 수 있도록, 그들에게 평화를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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