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운 회개悔改의 때
가톨릭교회에서 오늘은(3월 5일) 재의 수요일이다. 오늘을 시작으로 40일간의 ‘사순시기’가 시작된다. 예수가 인류구원을 위해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박해와 수난 속에서 고통을 겪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의 40일 동안을 함께 묵상하고 참회한다.
사순시기동안 예수는 죽음을 향해 걸어가지만, 그렇다고 해서 슬픔과 비통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톨릭교리 안에서 신자들은, 하느님과 대화하고 화해하며 회개하고 자비와 구원을 갈망한다. 그 안에서 우리는 분명,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복음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다진다.
지난 12월 3일, 그날 이후로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그 모양 그 꼴밖에 되지 않는 사람을 다른 누구도 아닌 국민의 손으로 국가원수의 자리에 앉혔다는 것이 낯부끄럽고 원망스러워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누구를 향한 원망인가. 결국 내 얼굴에 침 뱉기인 것을.
그 와중에 큰 사고가 터졌다. 12월 29일, 무안공항에 착륙하던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로 179명이 목숨을 잃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을 수 있을까. 어찌하여 승무원 2명을 제외한 승객 전원이 사망하는 이런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지금도 기막히고 어이없음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뒤늦게 인생의 반쪽을 다시 만나, 깨 볶으며 하루하루 넘치게 사랑을 나누던 대만의 유명배우 서희원과 한국가수 구준엽은 난데없는 비보로 많은 이들을 눈물짓게 했다. 그저 감기인 줄 알았는데 며칠 만에 증상이 악화되어 죽음을 맞이하다니. 인생 참 얄궂고 매정하다.
고작 스물다섯 해도 채 살지 못하고 젊은 여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녀에겐 이 세상이 따듯하지 않았고 가혹했으며 끔찍했을까. 표현의 자유, 나의 의견을 소신 있게 말할 자유는 당연한 것이지만, 폭언과 비난, 그로 인해 한 인간을 아득한 밑바닥으로 끌어내려 죽음에 이르게 할 자유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인간은 인간에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 싫든 좋든 간에, 호불호를 떠나서, 인간이라면 예의 있게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내가 대단하고 안타깝게 소중하면 상대도 마찬가지야.
누구도, 누굴 함부로 할 순 없어. 그럴 권리는 아무도 없는 거란다.
그건 죄야. - 드라마 '모래성'
방학 중에 가장 안전하고 안전해야만 하는 곳, 학교에 있던 초등학생이 교사에게 살해당했다. 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는 구조물 붕괴사고로 노동자 4명이 사망했다. 매일매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뉴스 보기가 겁날 지경이다. 우리는 대체 얼마나 많은 죽음을 더 겪어야 하는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 아니라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면, 지킬 수 있는 목숨이었다면. 우리는 무언가 많은 것을 놓치면서 허겁지겁 어영부영 어찌어찌 대한민국에서 살아내고 있는 것 같다.
설 연휴 동안 남편과 여행 중이었는데, 10년 넘게 알고 지낸 친한 언니에게서 갑작스러운 부고 문자를 받았다. 설 연휴 첫날, 언니의 남편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고, 끝내 깨어나지 못한 채 하늘로 떠났다. 연휴 동안 언니의 마음이 어땠을까. 중환자실에 누워 하루하루 꺼져가는 남편의 숨결을 느끼며 어떤 마음으로 남편을 보내줬을지, 그 마음 도무지 헤아려지지가 않는다. 긴급히 서울로 방향을 틀어 언니에게 달려갔다. 장례식장엔 사람이 많았고, 모두들 눈물바람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을 산다.
은혜로운 회개의 때 우리에게 주시어 우리 죄를 아파하며 뉘우치게 하시네
주 예수여 당신 수난 항상 맘에 품고서 내게 주신 고통 지고 당신 뒤를 따르리 - 가톨릭 성가
교회 안에서 사순시기는 ‘은혜로운 회개의 때’이다.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보며 우리 스스로 죄를 아파하고 뉘우치게 하시는 나의 하느님. 사순시기는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어 거저 내어주신 ‘회개의 때’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 의미를 잘 알아듣고 뉘우치고 성찰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지금, 지난날의 과오를 아프게 겪어내고 있다. 휘청이고 헤매며 힘겹게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우리가 언제 잘난 임금 덕에 배불리 먹고살았던 때가 있었단 말인가. 전쟁 통에 임금이 백성을 두고 도망갈지언정, 백성들은 곡괭이와 낫을 들고 왜란과 호란을 겪어냈다. 내손으로 나랏님을 뽑는 세상이 왔어도,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이름을 선명히 새긴 건, 잘난 나랏님 아니고, 교양 없는 정치인들 아니고, 똑똑하고 성실한 국민, 김구 선생님이 말씀하신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이 땅의 국민들이다. 그러니 이 나라의 긴 역사 속에서 지금의 고난과 역경은 우리에게 감사히 주어진 ‘회개의 때’ 일 뿐이다. 회개가 꼭 신앙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 속에서 우리가 놓친 것은 무엇인지, 되새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작 10년도 안되어 탄핵정국을 다시 맞이하게 된 이 대한민국에서, 낯부끄러움을 또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성찰해 볼 수 있길 바란다.
피로써 일궈낸 이 땅의 민주화, 그 땅을 밝게 비춘 꺼지지 않는 촛불, 그 위에 자라난 응원봉.
우리는 분명 진보進步(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짐)하고 있으며, 폭력은 평화 앞에 정당화될 수 없다.
연달아 이어지는 사건사고들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단장斷腸의 슬픔으로 하루하루 버겁게 살아내고 있을 유가족들을 기억하며, 슬픔이 너무 깊어 그들을 집어삼키지 않도록, 나의 주님께 자비를 청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 사도 바오로 코린토 2서 5장 21절, 6장 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