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과 작별한 지 벌써 2달째다. 이제야 ‘나의 2024년은 어땠는가’ 생각해 보는 게으름에 대해 반성하며 글을 써본다.
나의 2024년은 어땠는가.
2월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요즘에는 동네마다 시청 또는 구청에서 운영하는 체육관이 있는데, 우리 동네에도 도보로 접근 가능한 거리에 체육관이 있다. 다양한 종류의 프로그램들이 운영되는데, 나는 골반비대칭도 심하고 혈액순환도 잘 안 되는 편이라 요가수업을 시작했다. 월/수/금 수업은 요가보다는 소도구 필라테스에 가깝고, 화/목 수업은 정통 요가수업이다. 각 수업마다 움직임이나 근육의 쓰임이 달라 서로 상호보완되어, 주 5일 동안 지루하지 않고 양질의 수업을 받을 수 있어 너무 좋다. 나는 잘못된 수면자세 때문에 골반이 삐뚤어져, 평상시에 왼쪽다리가 무겁고 저린 증상이 자주 있었는데, 요가수업 덕분에 많이 좋아졌다. 매일매일 정해진 시간에 운동을 다니게 되니, 규칙적인 시간관리를 하게 되고, 잠도 잘 자고, 몸도 건강해진다. 2025년에도 꾸준히 운동해야겠다.
오르간 반주 봉사가 늘어났다.
요즘 성당들은 여기저기 봉사자들이 부족하다. 물론 신자수가 줄어든 탓도 있겠지만, 예전처럼 봉사활동에 관심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우리 동네 성당에서 목요일 오전미사 반주를 하는데, 저녁미사 반주자가 관두게 되면서 임시로 저녁미사까지 맡게 되었다. 그런데, 도무지 봉사자가 나타나지 않아 내가 계속하게 되었고, 이제 임시가 아니라 고정으로 내 몫이 되었다. 하루에 미사를 두 번 본다는 것이 처음에는 조금 버겁기도 했는데, 이렇게라도 내가 쓰일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받아들였다.
9월부터는 정동에 있는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수요일 낮 미사 반주도 시작했다. 대략 10년 전쯤, 잠시 1년 미만의 근무를 했던 곳인데, 함께 일했던 언니와 계속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그곳의 반주자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당분간 쉬게 되었고, 내가 그분이 돌아올 때까지 자리를 채워주기로 했다. 언제까지 하게 될지 딱히 기약이 없기도 하고, 이러다 또 내 몫이 될 것 같기도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시내 구경 나가는 기분으로 외출하고 있다.
조카 돌봄에서 퇴직했다.
나는 엄마와 이별한 뒤, 딱히 직장생활을 하지 않았는데, 엄마가 떠난 다음 해인 2021년 3월부터 둘째 언니 아들의 하교도우미 역할을 시작했다. 그때는 코로나 다음 해였고, 막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어린이라고 하기보단 유아에 가까운 조카의 하교길을 함께하며, 집에 와서 언니가 퇴근할 때까지 간식도 먹고 저녁도 먹고 간단한 숙제나 책 읽기를 같이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해가 바뀌면서 학년이 올라가는 조카의 스케줄에 맞춰 주 5일 돌봄이었다가, 주 3일, 주 2일로 점차 줄어들었고, 만 3년 반의 시간이 흐른 뒤 드디어, 조카는 나의 손을 떠났다. 이제는 학원 끝나고 알아서 수학, 영어, 태권도학원을 시간 맞춰 다니고, 스스로 시간관리하며 간식 챙겨 먹고, 틈틈이 학원 숙제하는 빠듯한 일정을 해내고 있다. 올해는 조카가 5학년이 된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 하교길을 익히게 하고, 혼자 엘리베이터 타는 것을 적응시키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2학년 3학년이 되어가며 왕복 8차선쯤 되는 큰길도 혼자 건널 수 있을 만큼 대범해지고, 엄마에게 걸려오는 전화는 모른척하며 학교놀이터에서 한참 놀다 올 만큼 머리도 커졌다. 이제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질 나이가 되겠지. 조카 돌봄을 퇴직하며 후련하기도 했지만, 벌써 다 커버린 것 같아 서운하기도 했다. 그래도 조카가 안전히 건강히 잘 자란 데에는 나의 공도 있는 것 같아서 보람되고 뿌듯하다. 조카는 이젠 주말에도 학원 보충수업이 있고, 축구교실도 있고, 성당 주일학교도 나가야 되고, 어른들보다 더 바쁜 생활을 하고 있어 얼굴 보기 바쁘다. 앞으로는 더 바빠지겠지. 하루하루가 아쉽구나.
푸껫, 지리산 노고단, 제주도 쪽빛바다, 여기저기.
돌아보니 제법 여행을 많이 다녔다. 2월에는 남편과 푸껫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2013년 3월 신혼여행 이후로는 동남아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는데, 아주 오랜만에 동남아 여행길에 나섰다. 덥고 습한 날씨를 힘들어하는 지라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는데, 편안하고 쾌적한 리조트, 저렴한 물가, 친절한 사람들, 덥고 습하면 그냥 훌렁훌렁 헐벗고 다녀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 등등 동남아 여행의 장점을 맘껏 누리고 돌아왔다. 조만간 또 가고 싶다.
지리산 노고단과 제주, 말해 무엇하랴. 이곳들은 한국인에게는 몇 번을 가도 새롭고 아름답고 편안한 곳이다. 노고단 정상에 올라 구름을 발밑에 놓고 컵라면에 김밥 한 줄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 없다. 제주의 쪽빛바다와 파도소리는 내 맘속에서 지금도 일렁이고 있다. 곧 다시 가봐야겠다.
그 밖에 목포, 인제, 제천도 다녀왔다. 한국은 참 작은 땅인데 가는 곳마다 풍경이 다르고 음식도 다르고 공기냄새도 다르다. 어렸을 땐 이런 것 들을 전혀 모르고 살았는데, 이제는 느껴지는 것들이 다르다.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여유를 만들고 시간을 내어서 자주 움직이고 보고 듣고 체험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멀리도 떠나보고 가까운 곳도 새로이 둘러보며 나의 시간들을 채워낸 2024년이었다.
2024년이 시작되며 결심한 나의 미니멀라이프는 실패했다. ‘올해는 옷 사지 않기’가 나의 목표였는데, 나는 이것저것 옷을 많이 샀다. 하지만 필요한 것만 사려고 애썼고, 하나를 사면 하나를 정리했다. 구매하기 전 관리가 편하고 쉽게 망가지지 않는 물건을 사려고 심사숙고했고, 나에게 꼭 필요한 아이템인지 얼마나 자주 사용하게 될지 오래 생각한 뒤 구입했다.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나는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려고 애썼고, 나의 생활신조信條로 삼아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다. 생활신조를 넘어 생활양식으로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올해도 Keep going.!!!! 할 것이다.
글자 몇 줄로 나의 2024년을 어찌 다 적을 수 있겠냐 만은, (물론 여기에 적은 것 말고도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글을 쓰며 캘린더 어플을 뒤적거리고 사진들을 돌아보니 새삼 감회가 새롭고 나의 한 해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그래 이런 일이 있었지, 맞아 이때는 이랬었는데, 하는 생각들을 하며 반성도 해보고 칭찬도 해보고, 짠한 마음 뿌듯한 마음 기쁨 슬픔이 함께 어우러진다. 나의 한 해는 이랬다.
엄마가 떠난 뒤, 나는 조카 돌봄 하러 집 밖을 나서는 것 말고는, 주일에 성당 가는 것 정도가 유일한 나의 외출이었다. 딱히 무얼 하고 싶지도 않았고, 새롭게 일을 시작한다거나, 뭘 배워본다거나 어디 구경을 나선다거나 하는 일들이 다 무의미하고 재미없었다. 그러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2023년부터 조금씩, 한 발씩, 나의 일과를 시작해 냈다. 피아노 레슨을 시작하고, 성당 반주봉사를 시작하고, 운전면허를 취득하며, 나는 나의 시간을 채워나갔다. 2024년에는 나를 보살피는 운동을 시작했고, 이것저것들을 확장해 나가며 내 몸을 움직여보았다. 내가 다시 언제 일을 하게 될지, 또 새롭게 무엇을 시작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속도로 나의 발걸음으로 나의 생기生氣를 돋워 내고 있다.
이것이 나의 2024년, 나의 한해, 기특하게도 감사하게도, 잘 살아낸 나의 한해였다.
독자님들의 한 해는 어땠나요? 이랬든 저랬든, 결과가 어떻고 돈을 얼마나 모았고, 살을 얼마나 뺐던지 그런 것들 말고, 행복했는지, 즐거웠는지, 편안했는지, 뿌듯했는지 나의 감정을 돌아보고 토닥여줄 수 있는 각자의 시간을 가져보길 추천합니다.
모두들 수고 많았어요. 2024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