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클로스.
나의 어린 시절에는 산타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 어느 곳에나 산타는 있었겠지만. 우리 집에는 없었다.
아버지는 성탄절을 챙기는 낭만적인 아빠가 아니셨다. 그 시절엔 겨울철이 되면 학교에서 불우이웃돕기성금을 걷었었는데, 아버지는 우리가 불우이웃이라며 성금으로 낼 돈을 주지 않으셨다. 그래도 우리는 집도 있고, 밥도 삼시세끼 거르지 않고 먹는데, 왜 우리가 불우이웃인 걸까 의아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엄마가 성당에 나가는 걸 매우 싫어하셨다. 마치 공산주의 국가에서 종교의 자유를 금하듯, 아버지는 성당을 사이비 이단취급하며 말도 못 꺼내게 하셨다. 엄마는 아버지 몰래, 아버지가 긴 출장에 나섰을 때나, 일이 바빠 일요일에도 집을 비우실 때, 우리를 데리고 가끔 성당에 가셨다. 그런 아버지 곁에서, 성탄전야에 굴뚝을 타고 산타클로스가 집으로 들어와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 사라지는 이야기는, 정말이지 동화에나 나오는 마법 같은 이야기일 뿐이었다.
엄마와 아버지가 이혼하시고, 아버지의 집을 떠나 엄마와 살게 되었을 때, 우리는 말 그대로 ‘불우한 이웃’이 되었다. 우리 집은 엄마의 식당에 딸린 작은 다락방이었고, 그 다락방은 어린아이였던 내가 겨우 고개를 옆으로 삐죽 돌려야 온전히 설 수 있는 높이의 방이었다. 언니들과 엄마는 당연히 무릎으로 기어 다니며 생활했다. 그 다락방에서 2년 정도 살았던 것 같다. 그래도 식당 하시는 엄마 덕에 삼시세끼는 잘 챙겨 먹었으니 ‘불우이웃’까진 아니었다고 해야 할까.
그 다락방에서, 엄마는 우리를 성당에 보내셨고, 엄마가 믿는 신에 대해 알려주셨다. 성탄절이 무슨 날인지, 아기예수님은 어떻게 세상에 오셨는지 이야기해 주셨다. 그리고 성탄절 무렵에는 소박하게 식당을 꾸미시고 성탄노래를 틀어놓으셨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나에게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이 자라나고 있었다.
성탄전야가 지나고 크리스마스날 아침. 내 머리맡에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놓여있었다. 성탄카드도 함께 있었는데, 카드에 적힌 성탄축하문구 마지막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산타할머니가.’
어린 내가 매체에서 접한 산타클로스는 분명 할아버지였는데, 배까지 내려오는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산타할아버지였는데, 카드에는 ‘산타할머니가.’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글씨가 엄마의 필체였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산타클로스는 역시, 동화에나 나오는 마법 같은 이야기가 맞고, 지금 이 선물을 준 사람은 나의 엄마라는 것을.
산타클로스.
나는 대략 몇 살 때쯤까지 산타를 믿었을까.
생각해 보면, 애초에 나는 산타클로스에 대한 기억도 믿음도 없었던 것 같다. 산타의 선물을 받아 본 적이 없었으니. 내가 만난 첫 번째 산타는 산타할머니였고, 그분이 엄마였다는 것을 나는 처음부터 알아버렸으니까.
하지만 전혀 서운하지 않았고 아쉽지도 않았다. 나에겐 산타할머니가 있었으니까.
성당에선 캐럴을 불렀고, 성탄축제도 했고, 맛있는 음식도 나눠먹었으며, 신부님 수녀님들의 사랑 속에서 더없이 따듯한 성탄을 보냈다. 충분히 즐거운 성탄이었다.
훗날, 시간이 흐르고 흘러, 엄마의 백혈병 투병이 시작되었을 때, 암병동 입원실에서 도란도란 엄마와 옛이야기를 나누는데, 놀랍게도 엄마는 그 시절이 그립다고 말씀하셨다. 가난했고, 힘들었고, 좁디좁은 다락방에 무릎으로 기어 다니며, 어깨를 다닥다닥 붙여 누워야 겨우 누울 수 있었던, 그 시절 우리의 삶이 대체 뭐가 그립냐고 나는 물었다. 엄마는 대답하셨다. 그때는 비록 가난했고 힘들었지만, 젊고 건강했고, 노력하고 애쓰는 만큼 돈이 모였고, 아이들 키우는 재미,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고, 하지만 늙고 병들어 암병동에 누워있는 지금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나는 창밖을 바라보는 축 쳐진 엄마의 어깨 뒤에 우두커니 서있는 것 말고는 어떤 말도, 행동도 할 수 없었다.
늙고 병들어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던 나의 산타할머니는, 끝내, 암병동에서 임종을 맞이하셨고 하늘의 별이 되셨다. 하지만 나의 산타할머니는, 나에게 성탄을 알려주셨고, 성당에 데려다주셨고, 스스로 빛을 내어 반짝이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지혜와 사랑을 가르쳐 주셨다. 충분히 넘치도록 많은 것을 해내셨고 이루셨고 보여주고 떠나셨다. 나를 단단히 키워주신 나의 엄마, 나의 산타할머니, 이제는 선물도 없고 성탄카드도 없지만, 엄마는 곤히 잠자는 내 머리맡에서 언제나 내 이마를 쓰다듬고 있음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상 그 무엇보다 가장 값지고 가장 큰 성탄선물은 바로 나의 엄마, 산타할머니였다는 것을, 나는 40살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엄마,
엄마를 다시 만나려면, 얼만큼의 크리스마스를 더 보내야하는지 알수는 없지만,
우리 다시 만날 그날까지, 나는 내 가장 소중한 성탄선물, 나의 산타할머니를
가슴속 깊이깊이, 감사히 간직하며 살아갈게요.
나의 엄마 나의 산타할머니, 고맙고 사랑해요.
Merry Christmas!! Happ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