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샤 Oct 20. 2023

엄마가 배민을 알려달라고 했다

빠른 변화에 적응하는 것의 필요성, 그리고 포용력

새로운 기술은 빠르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그 속도를 따라갈 수 없으니 그저 적응하라고 말한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속도에 소외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나의 자녀가 살아갈 세상, 내가 살아온 세상, 부모님이 살았던 세상. 역순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세기를 살아가는 20, 30대 여성들이 공유하고 있는 암묵적인 딜레마가 있다. 전통적인 여성상과 신여성상 그 사이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8년, 여성주의 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했을 때 나는 20살이 되었고,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나와 내 친구들은 가치관이 많이 흔들렸다. 나는 미국이라는 개방적인 나라로 가게 되어 더더욱 그랬다. 그 중심에는 '우리 부모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가 있었다.


우리 엄마는 그 당시 많은 어머니들이 그랬듯, 가족을 위해 헌신했다. 미대 졸업 후 패션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했지만, 그 커리어를 뒤로 하고 결혼 후 자녀 양육에 올인했다.


내 첫 꿈은 아나운서였는데, 엄마의 못 다 이룬 꿈을 대신 이뤄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내 친구들은 비슷한 이유로 미래를 그려나갔다. 아버지가 군인이어서 그 뒤를 따라 군인을 꿈꾸거나, 이모부가 한의사여서 그 한의원을 물려받기 위해 한의사를 꿈꿨다.


뉴욕으로 총총총. 애증의 alma matar

나는 미국으로 대학교를 가면서, 미국에서 영주권, 그다음에는 시민권을 따고 정착할 생각이었다. 직장도, 결혼도 미국에서 할 줄 알았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지내는 것은 (그리고 공군 장교를 하는 것은?!!?!) 마치 패배자의 선택지 같았다. 갑자기 대학교 2학년 때, 코로나로 인해 모든 미국 유학생들은 자국으로 쫓겨났고 갑작스러운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는, 부모님과의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내 생각보다 미국에 살면서 그곳의 가치관들을 많이 흡수해 온 모양이었다. 엄마아빠 입장에서도 전 세계적인 감염병이 시작될 거라는 가능성은 고려하지 못한 게 당연한데, 그것도 하필 우리 딸이 미국으로 유학가 있는 동안이라니. 어찌어찌 서울 살이를 시작하면서 나는 엄마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대학생이 되어버린 나와 내 남동생이 이제는 독립 개체라는 사실에 적응하고자 발버둥 치고 있는 것 같았다.


[중심 잡힌 자아: 내면의 웰빙과 사회 변화의 연관성]


변하는 세상이 싫었으리라. 미국 유학 보내놓은 딸이, "가족과 나는 별개이고, 부모님에 대한 부양 의무는 필수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불편하셨으리라.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너는 적응해야 한다"라고 느끼게 하는 현상들을 피하고 싶었으리라.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 결국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엄마가 살아온 세상은 내가 자란 환경과 다르구나. 내가 충족시키고자 노력했던 것들과 엄마가 기대하는 것들이 부합하지 않을 수 있겠구나.




엄마가 집에서 혼자 무력한 기분을 받는 것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내가 석사 공부를 제안했고, 숙명여대 정책대학원 석사 과정에 합격하셨다. 내 취업 준비와 대학원 지원을 뒤로할 정도로, 엄마가 사회로부터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을 일 순위로 삼았다. 그 첫 물꼬를 틔워놓는 일을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엄마의 우리 가정에 대한 희생은 나의 시간 투자로 보상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했다. 이기적이고 이타적인 것을 떠나서, 도리에 맞는 일이었다.


엄마는 올해 여름,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사실 우리 가족 모두 엄마의 석사 취득을 제 일처럼 여겼다. 남동생은 줌 수업 연결과 온라인 과제 제출 등을 도왔고, 아빠는 엄마의 논문 작성을 도와주셨다. 무엇보다 엄마 본인이 오랜만에 공부를 하면서 열정을 다하고, 알을 깨고 나오는 모습을 우리 가족 모두 지켜보았다. 나는 엄마가 대학원 수업에 열정을 가지고 임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혼자서 울컥할 때가 많았다.


뭔가 엄마의 석사 취득을 축하하는 글이 되어버렸다!

전업 주부였던 50대의 여성이 국가 기관 정규직으로 취직하고, 퇴근 후에는 책상에 앉아 석사 공부를 하는 모습은 나에게도 많은 자극점을 줬다. 변화하는 세상에 맞추어가야 한다는 가치관으로 줌 사용법을 배우고, 논문 읽는 방법을 배우시더라. 나는 과연 내 오랜 생각들을 깨어가며 세상을 배우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나는 엄마보다 모범적인 엄마의 역할을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최근에는 엄마에게 배달의 민족 사용법을 알려드렸다. 엑셀을 두려워하지 않고, 토스의 이런저런 기능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줄 알면서도, 또 새로운 것이 궁금하셨는지 내게 알려달라고 하셨다. 이전에는 배달의 민족 주문 과정을 3번은 반복했을 나도, 한 번에 모든 과정을 설명해 드릴 수 있었다. 이제 그 정도는 하실 줄 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의 문화, 방식, 가치관에 적응하고자 하는 노력 뒤에는 엄마의 포용력이 있다. 자기 자신을 깨부수고 더욱 넓은 세상을 받아들이기 위한 마음. 두려워하지 않고 '해보면 된다, 별거 없다'라는 태도를 가질 수 있는 힘의 원천은 어디일까. 실패에 많이 부딪혀봤기 때문일까, 혹은 질풍노도의 자식 두 녀석을 키워낸 내공이 있기 때문일까.


나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 나의 욕심을 조금 내려놓더라도 내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우러지고 싶다. 적어도 그 태도를 가지고 살고 싶다. 나의 엄마처럼.

이전 09화 넌 개발자치고 예술적인 것 같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