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왜 군대를 가요?
9월 달, 잘 다니던 자율주행 인공지능 스타트업을 퇴사하며 난 본격적으로 장교 시험을 준비했다. 병과는 다름 아닌 통역. 갑작스러운 커리어 체인지에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었다. 왜? 굳이? 처음에는 잘 대답하지 못했다. '군 경력이 있으면 도움 될 것 같아서요', '애국심이 투철해서요' 등 앞 뒤가 맞지 않는 대답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즉, 나 자신을 납득시키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사실 나는 3년 전 졸업을 앞두면서도, 졸업하자마자 장교 훈련을 들어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주변의 반대와 나의 창업에 대한 욕심으로 결국 지원하지는 못했지만. 졸업 후 지금까지 2년간 창업과 스타트업 업무를 하며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어 갈 수 있는지 어깨 너머 배웠고, 나는 어떤 업무와 합이 잘 맞는지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깨달음을 통하여 통역 장교로써 군 복무를 결정하게 되었다.
첫 번째 깨달음은 나는 단순 엔지니어링 혹은 R&D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는 나는 R&D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내고 싶어서, 나의 본질과 어울리지 않는 업무를 억지로 도맡기도 했었다. 지금 돌아보면, 내 과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감사히도, 이전 회사에서 연구원(researcher)과 프로젝트 매니저(PM)의 역할을 모두 경험하였고, 나는 PM의 업무, 즉 ‘기술 기획’ 또는 ‘기술 정책’과 같은 분야에서 가장 두각을 발휘할 것임을 나 자신에게 이제야 인정하였다. 소통 능력과 회의 진행력을 배우기 위하여, 더욱 많은 의사 결정 과정에 통역으로 참여하여 군 고위 장교들의 태도와 의사 결정 과정을 배우기로 다짐하였다.
두 번째 깨달음은 소통의 중요성이다. 인공지능 연구원 포지션에서 프로젝트 매니저(PM) 팀으로 발령이 났을 때, 나는 PM의 업무와 합이 잘 맞았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 변동가능성을 염두에 둔 구체적인 타임라인을 만들었고, 소프트웨어 업계 외의 산업 전반적인 부분에 대하여 이해하고자 노력했고, 이를 위한 비즈니스적인 톤 앤 매너에 대해서 연구했다. 특히 기술 개발 엔지니어들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할 때는, 확실한 범위(scope)를 지정하여 소통했다. 이와 더불어, 프로젝트 실무자 및 관계자들이 같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be on the same page) 모두의 접근 권한이 있는 채널을 설정하여야 했다.
또 다른 이유는 나의 단점들을 보완하기 위한 가장 좋은 환경이 군대라고 생각한 것이다. 일단 나는 체력이 좋은 편이 못된다. 몸과 정신은 별개의 엔티티가 아닌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는 철학의 한 관점이 있듯, 체력은 정신력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먼 미래의 나에게 건강한 몸과 마음을 물려주고 싶다. 그리고 나는 끈기가 굉장히 부족한 사람인데, 3년 의무복무라는 상황 속 악으로 깡으로 버티며 꾸준히 하는 힘을 기르고 싶다.
사실 모든 이유를 떠나서, 내 마음을 가장 설레게 하는 선택지였다. 도파민 중독인가? 나는 아예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에 심장이 반응한다. 물론 군에 가면 또 적응하고,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마음에 답답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유를 묻지 않고, '그저 하고 싶다'는 이유로 당장 뛰어들 수 있는 상황이 얼마나 있을까. 그래서 지금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다. 앞으로 누군가 왜 군대에 가는지 (혹은 왔는지) 묻는다면, "지금 하필 군인이 하고 싶어서요."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