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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샤 Oct 19. 2023

넌 개발자치고 예술적인 것 같아

사랑하는 것을 업으로 삼을 수 있나요?

전 회사를 퇴사했을 때, 가장 큰 이유는 재미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처음에는 매일 출근하는 것이 기대되고, 새로운 팀원들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이 즐거운 시절이 있었다. 그 기대감이 끊어진 채로 사직서에 사인을 했고, 퇴사를 한지 한 달 반이 지난 지금, 일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종종 유튜브에서 드라마 <미생>의 클립들을 몰아보곤 하는데, 이 대사가 꽤나 와닿았다.


"회사에서 봉급 받는 놈들이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어? 회사에서 하라고 하는 일이 다, 할 수 있어야 되는 일 아니야?"


의외로 공감되는 미생의 한 인물: 김부련 부장


학생 때는 내 분야를 사랑했다. 컴퓨터 과학의 여성 기술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프런트엔드도, 백엔드도, 인공지능도, 데이터도 공부만 하면 내가 바로 최고가 될 것만 같았다. 그것은 졸업하고 "개발자"가 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우러러보는 시선도 한몫했으리라.


지금은 사실 잘 모르겠다. 컴퓨터과학과 진학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충분히 고민하기 전에 내린, 19살 나의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자 이제 내가 사랑하는 악기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친애하는 나의 10년 된 바이올린. (나중에 이탈리아 여행을 가면 새로운 악기를 데려올 것이다!)

부활절을 맞이하여 교회 칸타타에 오케스트라로 참여했다.


나중에 올라온 영상들을 보는데, 바이올린을 잡고 있는 내가 되게 행복해 보였다. 내가 평소에 행복해지는 트리거들을 잘 이해하고 있나 싶다가도, 이렇게 새로운 그리고 의외의 인풋이 들어올 때 느끼는 감정은 색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악기를 15년을 했는데 좋아서 한 게 아니라면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내 전문 분야도 마냥 좋은 쪽으로 선택하면 참 좋을 텐데, 오늘 아침에 하는 고민들은 참 아쉽다. 아주 중요한 선택을 빠르게 내려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과연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또 다른 행복의 트리거가 되었음을 확신할 수 있기를.


- 2023년 봄의 일기 中 -



11살부터 바이올린을 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도 꾸준히 했다. 레슨을 받았고, 정기 오케스트라 합주에 참여했다. 악기와 함께 사춘기를 보내고, 대학에 가고, 직장 생활을 하며 나에 대해 알게 된 것 중 가장 유의미한 것은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업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학교 동기들, 회사 동료들에게 '넌 개발자치고 예술적이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매년 재즈 페스티벌, 록 페스티벌에 가고, 퇴근 후 오케스트라 연습이 있다고 말했을 때 그랬다. 개발자치고? 그렇다. 내 업은 공학이다. 내가 음악을 사랑한다고 해서 갑자기 음악가가 될 수 없는 법이다. 이러한 생각은 현존하는 음악가들의 노력에 대한 가치 절하이기도 하고, 내가 사랑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을 때의 실망감을 과소평가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야 한다. 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데에서 멈추지 않고, 주변 나와 관계를 맺어가는 사람들을 거울로 내 안을 살펴볼 줄 알아야 한다. '나는 24살이고, 개발자이고, 서울에 살고 있다.' 정도의 정보는 챗 GPT가 자신을 이해하고 있는 수준에 그치지 못한다. 챗 GPT에게 '너는 누구야?'라고 물어봤을 때, 아래와 같이 답변했다.

ChatGPT:

저는 ChatGPT라고 불리는 인공지능 기반의 언어 모델입니다. OpenAI가 개발한 GPT-3.5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합니다. 제 목적은 다양한 질문에 답하고, 정보를 제공하며, 일반적인 상황에서 도움을 드리기 위해 사용됩니다. 어떤 주제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으며, 대화, 질문 응답, 문장 생성, 텍스트 생성 등 다양한 언어 기반 작업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알고 싶거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 주세요.


'네가 좋아하는 건 뭐야?'라고 물어봤을 때의 답변은 아래와 같았다.

ChatGPT:

저는 인공지능 모델로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저 프로그래밍과 데이터를 통해 작동하며, 사용자의 질문에 최대한 도움을 드리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제 목적은 사용자의 요청을 이해하고 유용한 답변을 제공하는 것뿐입니다. 따라서 개인적인 기호나 감정을 가질 수 없습니다.


녀석 어휘력... 닮고 싶다...


위 챗 GPT의 답변처럼, 인공지능은 개인적인 기호감정을 가지지 않는다. 단 몇 초 만에 인터넷의 글들을 요약하고, 정리해서 보여주는 이 똑똑한 녀석과 우리가 구분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이해하고 있어야 할 터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그 대상이 나에게 어떤 금전적, 지식적 이득을 주는지 판단하기 전에, 그냥 향유하면 될 것 같다. 조금 더 '인간'적인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번외로, 예술을 향유하는 것에 대한 유행이 생겼으면 좋겠다. 어쩌면 이것도 교만이고 선민의식일까? 나는 우리의 내면이 더욱 다채로웠으면 좋겠다. (내 오래된 친구이자 최고의 음악러버인 최 모 양은, 그 누구보다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을 명확하게 가리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 매일 운동하는 문화가 대중화된 지 얼마 안 됐다. 헬스뿐만 아니라 필라테스, 폴댄스, 발레, 골프, 테니스와 같이 접근성 있는 운동의 종류가 다양해진 것도 몇 년 되지 않았다. 나는 그다음 유행이 사유할 줄 아는 능력에 대한 갈망이었으면 좋겠다. 특히 엔지니어들이 자기 자신을 수동적인 기계의 부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엔지니어링은 그 의미를 어떻게 찾아야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공존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사유해야 한다. 잊지 말자, 우리는 이 복잡한 이분법 숫자와 전류의 연속을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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