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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Sep 28. 2022

만나면 기분 좋은 사람

그렇게 살고 싶다



멍하니 보내는 가을날이 깊어갈수록 내가 쓰고 싶은 것에 대한 갈피를 못 잡을 때가 많다. 오늘은 어떤 글을 쓸 거냐는 물음에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겠다고 하고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마침 세탁을 끝냈지만 건조기에 넣지 못하는 세탁물을 안고 나오며 번뜩, 하루 내내 햇볕에 보송하게 잘 마른 빨랫감 냄새와 바스락 거리는 촉감이 떠올랐다. 나는 축축하게 젖은 빨랫감을 안고 있지만 보송한 그 기분은 상상만 해도 즐겁기에 잠깐 나도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바스락 거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에게 기분 좋은 사람으로 남는다는 건 꽤 힘들지만 흐뭇한 일일 테니까 말이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가 떠오른다. 무취의 그르누이가 자신만의 향기를 찾기 위해 끔찍한 살인도 서슴지 않았던, 그러면서 결국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내면의 향기란 무얼까 생각하게 해 주었던 소설이었다. 십 년도 더 지난 오늘의 나에게도 아주 생생히 남은 질문이다. 사람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유, 무형의 체취와 어우러짐은 어떠한가 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다.


나의 사귐의 폭은 그다지 넓지 않아 매번 만나는 사람들은 비슷하다. 어쩌다 한 번씩 만나는 친구들도, 또 어쩌다 만나게 되는 사람들도 나와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있거나 아니면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이어서 굳이 나를 포장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 편한 자리인 것이다. 이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2년, 되도록 아이 뜻대로 만남의 자리를 지속할 수 있게 크게 터치하지 않는 편이지만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에는 그렇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아이를 중심으로 모이지만, 아이 친구가 엄마 친구가 된다는 확신은 없기에 말을 아끼게 된다. 그렇지만 모두 사람이다 보니 뜻하지 않게 뱉은 말이 돌아 오해가 되기도 하고 얼굴 붉힐 일이 생기기도 한다. 나도 그런 적이 있으니 매사 사람 사이의 일을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에너지 소비, 감정 소비라고 해야 옳겠지. 내가 그저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실에까지 고개를 끄덕여주고 있다 보면 돌아오는 길에 으레 내가 무슨 이야길 하다 온 건지 대체 왜 거기에 맞장구를 쳤는지 모르겠다며 내 머리를 칠 때도 많다. 아마 이런 생각이 반복되는 자리가 나를 지치게 하는 것일지 모른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억지로 엮으려는 데서 비롯된 잘못 묶인 매듭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주일학교 행사가 많아 성당 선생님들을 더 자주 만나게 되었다. 종교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세상을 보는 여유가 있으신 것인지 이분들을 만나고 나면 그 순간이 참 깨끗하고 좋았다. 물론 종교 안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지만 그분들과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자연스레 내 마음이 숙연해질 때가 많아진다. 은연중에 내가 뱉은 말에 어머나! 얼굴을 붉히게 되는 순간 같은 거 말이다. 여자들의 흔한 대화 주제가 보통은 아이, 남편, 시댁이라고 하는데 물론 그런 주제로 이야기하더라도 섣불리 누군가의 험담을 하지 않는다. 추측성 발언이라면 거리를 두고 본인 기준에서 판단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나고 보아도 꽤 훈훈한 만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내가 생각하는 마음 맞는 사귐이란 이런 것이다. 나를 자라게 하고 내 마음을 데워주는 이런 어울림이 좋다.



9월 한 달은 니체의 말 온라인 필사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우연처럼 그저께 던져 준 필사 문구와 오늘 필사 문구가 모두 사람 사이의 일이라고 생각되는 문구들이다. 한 가지는 사람 간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네 가지 덕을 일러주는 말이었는데 거기에 보태 나는 배려와 공감 또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오늘은, 사람과의 교제에서 말은 가능한 호의적으로 하되, 마치 상대보다 둔한 감각을 가진 듯하는 게 사교의 요령이며 사람에 대한 위로이기도 하다는 문구를 만났다. 나더러 배려와 공감에 절제의 미덕까지 보태라는 말로 여겨진다. 내가 만나서 편안한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해서 조금 놀랐다. 그나저나 요즘은 어디서든 사람 만날 일은 많지만 편안한 만남을 지속해가는 것은 힘들다는 것을 몇 마디 옮겨 적으면서도 느끼게 된다.


무르익는 가을처럼 나도 속이 깊고 꽉 찬 사람이 되고 싶다. 갓 마른 빨랫감의 따끈하고 바삭거리는 감촉처럼 나도 그렇게 꼭 껴안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들에게 받는 은근한 스트레스로 유난히 나른하고 벅찬 여름을 보낸 후 쉬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내게, 내 스스로 만족할 만한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그저 깊어지고 또 쓸데없이 길어진 글이 되었다. 이제 덜 휘청이며 제자리에서 내 몫의 향기를 뿜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두서없는 글은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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