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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Oct 11. 2022

왜 자꾸 도삽을 질까

나의  일상이 튼튼히 뿌리내리길 바라며



“또 도삽을 짔네.” 엄마의 말에 아침부터 뒤통수가 후끈하다. 지난 주말에 오셨을 때와 집 상태가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정리정돈을 잘 못하는데 대신 싫증을 잘 내서 집안의 큰 가구들을 여기저기 재배치하는 걸 즐기는 편이다. 이런 습관은 이미 결혼 전인 학생 때부터 굳혀온 거라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돌고 돌다 결국 처음 자리로 돌아갈 때가 많지만 이렇게 옮겨놓으며 땀을 흘리다 보면 무언가 충전이 되는 느낌이다. 사실 아무 이유 없이 집안의 물건들을 요리조리 옮겨두는 것은 아니다. 이게 은근히 스트레스 해소가 되는 행동이어서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열 일 제쳐두고 먼저 움직여보는 것은 고질병이 된 지 오래다. 어지러운 내 마음 상태를 대변해주는 행동일 거다. 환경이 바뀌면 무언가 기분 전환도 되고 분위기 전환에 마음까지 떠오를 거라는 생각. 리셋이 되는 것이다. 그럴 시간과 힘이 있으면 그냥 운동을 하라는 이도 있지만 나만의 문제 해결법이다. 사실 나는 엄마한테서만 저런 말을 듣지만 아이는 친구에게, 남편은 학습지 방문 선생님께 “또 바뀌었네요.”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다며 그만 좀 하라는 눈빛을 보낸다.


좁은 집의 가구를 재배치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눈에 띄는 가구라 해야 소파, 테이블, 디지털피아노가 전부다. 그런데도 사각의 프레임에 요리조리 내 쓰임대로 물건을 옮겨 놓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햇살 가득한 창가에 소파를 두었다가 또 어떤 날엔 테이블을, 다른 때에는 피아노를 두는 식이지만 그렇게 골고루 햇살을 머금으며 함께 자라는 기분이다. 그러다 보면 내 등 뒤로 따스한 볕이 들기도 하고, 때때로 눈이 부셔 앞이 새하얘지는 날도 있다. 그런 것이다. 내 손으로 바꿔가며 만나는 평범하지만 조금 다른 집의 모습이 큰 변화 없는 내 일상을 가끔 흔들어주는 것이다. 그 때문에 무언가 변한 느낌에 설레기도 하고, 설레는 기분으로 다른 날보다 더 많이 웃기도 하고, 즐거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커다란 가구들을 척척 옮겨낼 때처럼 주변과 일상의 정리정돈을 잘하고 싶을 때도 많다. 생각이 새는 일이 흔해서 주변을 정리 정돈하는 일이 힘들다. 여기저기 펼쳐놓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무언가 보태고 보태는. 그래서인지 머릿속도 잔뜩 어질러진 책상 위의 상태와 같을 때가 많은 것이다. 가끔 자기가 만든 루틴대로 살아가는 지인들을 보면 난 절대 저렇게 못하지 하다가도 어떤 때는 아주 많이 부럽다. 단조롭게 보이는 그들의 생활이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이유가 매일 꾸준히 뿌리내린 정리정돈에서 오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 집이 한 차례 폭격 맞은 것 같은 상태가 되고 나면 아차 정리해야지! 하며 내 정신이 번뜩 깬다. 최근에는 꾸준히 쌓아온 이런 내 도삽의 원인이 그렇게 켜켜이 쌓여 온 미숙한 정리정돈 습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꽤 오래전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때에도 지금처럼 한창 마음이 흔들리던 시기였다. 그래서였는지 사소한 하나의 습관이 쌓여 만든 일상의 소확행과 그 루틴들이 참 맘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방금 또 남편이 집이 정리가 잘 되어 있으면 무언가 할 마음이 생길 텐데, 라는 말을 흘리고 갔다. 괜히 잘 풀리지 않은 일의 꼬투리를 잡아보는 것임을 알면서도 마음이 아주 잠깐 쪼그라들었다. 한 번 더 그 뿌리를 다져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꿈틀거린다.

엄마의 눈에 여전히 도삽으로 보이는 내 크고 작은 움직임들이, 주변을 잘 돌보기 위한 몸짓으로 느껴질 때까지 조금 더 힘을 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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