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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Jun 18. 2022

소소한 하루

자잘한 행복


꽃무리 앞에 하염없이 쪼그려 앉아계시는 할머니를 만났다. 멀찍이 서서 무엇이 할머니 걸음을 멈춰 세웠을까 흘낏 보았는데, 나중에서야 그것이 길섶에 가득 핀 패랭이꽃이었음을 알았다. 내가 본 것은 할머니의 뒷모습이었지만 그분은 두 눈 가득 생기 넘치는 꽃을 담는 중이셨으리라. 꽃을 보며 활짝 피었을 그분 얼굴을 뵙진 못했지만 희끗하게 핀 당신 머리칼이 대신 바람에 경쾌하게 날리고 있었다.



세월에 덧입혀지면 꽃이 좋아진다고 하던데 얼핏 그것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어느 틈엔가 숨었던 꽃들이 고개를 내민다. 성당 마당 가득한 풀꽃들, 출근길 가득 핀 빨간 넝쿨장미도 빼놓을 수 없다. 더 어릴 적엔 새빨간 장미가 촌스럽다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언젠가부터 나도 그 향기에 취해 꽃 앞에 선다. 겹겹이 탐스럽게 벌어진 꽃송이를 보고 ‘아! 예쁘다!’하고 폰 카메라를 들이미는 나를 만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나이가 들었단 증거일까. 어쩐지 나이만을 이유로 들기에는 너무 서글퍼지니 만나는 것들에 대한 태도의 변화라고 해두어야겠다.

꽃집에서 만나는 크고 화려한 꽃들도 물론 예쁘다. 그러나 쉽게 무슨 꽃 주세요, 하면 가슴팍에 편히 안기는 꽃 말고 내가 오가는 길에서 피고 지는 꽃들을 만나려면 자연히 나를 조금 낮춰야 한다. 허리를 숙여야 잘 보이는 꽃들도 있고, 지난번 만났던 할머니처럼 쪼그리고 앉아 보아야 그 예쁨이 배가 되어 보이는 꽃들도 있기 때문이다. 바쁘게 걷느라 하늘 한번 올려다볼 여유도 없을 때가 많지만 나도 꽃이 피는 계절에는 평소보다 더 두리번거리게 된다. 주변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 편안해지고 말랑해진 것은 아닐까. 이것이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나만 아는 사람이 아니라 주변과 어우러질 줄 아는 자연스러운 멋을 알아가는 나이가 되어가는 과정은 아닐까.




꽃이 지고 나무 비가 내리는 날의 연속이다. 한창 예쁜 계절이다. 지는 꽃을 바라보며, 또다시 활짝 필 꽃들을 기다리며 나의 생이 바람에 흩날리듯 자연스럽게 흘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흘러가는 계절을 즐길 줄 아는 나이가 되어서 좋다. 누군가는 네 나이가 몇인데 벌써 나이 타령이냐 할지 모르겠지만, 나무가 보이지 않는 나이테를 매년 늘려가듯 주변을 바라보는 마음의 나이가 나 역시 더 둥글어지고 촘촘해져 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다. 유연하게 흔들리며 살고 싶다. 매일이 이렇게 자잘한 행복으로 영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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