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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Jul 03. 2022

오늘의 행복을 남겨둘 용기

사진_시간을 담다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듣는 것만큼이나 낯선 것이 사진 속의 내 모습을 보는 일이다. 거울 보는 것도 즐기지 않는 내가 순간이 아닌 영원이 될 사진에 담기는 것을 좋아할 리가 없다. 특별히 나의 사진이라고 남아 있는 것은 아주 어릴 적이거나 연애 시절, 큰맘 먹고 찍은 가족사진 혹은 누군가 나 몰래 찍어준 사진이 전부다. 그러니 카메라 앞에 서서 ‘자, 웃으세요.’라는 말은 내 얼굴에서 웃음기를 더 걷어갈 뿐이다. 그럼에도 사진은 추억 제조기 같아서 찍을 당시에는 그렇게도 싫던 것이 제법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들면 마음을 꽤 먹먹하게 하는 물건이다.


내가 사진에 가장 많이 찍힌 때는 단연 대학원 시절이다. 언젠가 내 글에서 추억하기도 했던 선생님께서 늘 카메라와 함께 하셨던 덕분인데 그 시절 풋풋한 20대의 모습은 어느 날 문득 나는 이랬지 하며 불끈 용기를 치솟게 한다. 글을 쓰다 잠깐 그 시절에 젖어 사진을 보다가 피어오르는 기억과 웃음을 마주해보니 사진에 찍히는 것도 썩 나쁜 것은 아닌 게 맞다.

찍는다는 예고와 함께 박제된 사진은 웃음기 싹 걷힌 말 그대로 사진일 뿐이었지만, 의식하지 않는 사이 누군가 내게 포커스를 맞추어 찍어준 사진은 달랐다. 찰나를 포착해 그곳에 물든 나를 예쁘게 담아준 사진에는 생기가 돈다. 설핏 웃는 나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담은 사진 속에 당시에 내가 느꼈을 행복이 그대로 담겼다.

지금 와서야 말이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당시에 선생님께서 찍어주신 옆얼굴이 클로즈업 된 사진이다. 내가 모르는, 하지만 진짜 나인 모습 그대로 담겨서 참 많이 좋아하고 아꼈던 사진이다. 화창한 봄날, 야외 수업을 갔던 때였나 보다. 단발머리에 앞머리를 내린 스물대여섯의 내가 사진 속에서 수줍게 웃고 있었다. 살포시 웃는 내 얼굴과 무엇에 집중하고 있으면 쫑긋 오므라지는 입술, 내 입술 위의 작은 점까지 그대로 담긴 초록 숲에 앉은 내 모습이었다.


지나보면 사진만큼 좋은 추억 저장소는 없는데 나는 여전히 사진 찍기를 꺼린다. 가끔 딸아이가 내 휴대전화나 패드를 가져다가 사진을 찍는다. 혼자 온갖 요란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어두는데 그걸 보고 나도 모르게 히죽히죽 웃게 되는 걸 보면 아마도 그런 것이 사진을 찍고 찍히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그러다 아주 가끔 엄마인 내 사진도 몇 장 찍어뒀구나 싶으면 멈칫하고 한 번씩 더 들여다본다. 익숙한 듯 낯선 내 모습 때문이다.

사진첩을 열어두고 지난 시절을 떠올린 일만 해도 나중에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고 하는 어른들 말씀이 조금 이해되련다. 오래도록 추억할 만한 사진을 어제보다 조금 더 많이 남겨둬야지 하는 마음을 끄집어낸다. 오늘의 행복을, 슬픔을 잊지 않고 남겨두는 용기를 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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