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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Mar 06. 2022

제 선물이에요

내일을 기대하게 만든 손편지



선물이라는 말만 들어도 괜히 설렌다. 오랜만이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은 것은. 주기만 했지 정작 내 것은 없던 내 이름이 각인된 펜과 손편지, 과일, 바디용품 등이 한날 내 차지가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무슨 선물을 받고 싶어?라고 물으면 나는 아마 돈이 가장 좋다고 대답할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편지라는 대답을 할 거다. 상대방의 마음을 오롯이 갖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손편지가 좋았다.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도 마음 닿는 대로 써서 보내는 손편지야말로 정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펜 끝에 쓴 이의 망설인 흔적이 담겨 있고, ‘이런 마음을 가졌단 말이야?’라는 의문을 갖게 하는 말, 연필로 지웠다 쓴 흔적까지 모두 사랑스럽다.

편지 쓸 일도 받을 일도 잘 없지만 나는, 누구에게 라고 시작하는 글자를 적을 때부터 마음이 간질간질해진다. 내 마음이 알알이 굴러가는 것 같아 그 순간만큼은 아주 애틋해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도 편지를 받으면 그만 터지기 직전의 풍선이 된다.



2월 말, 오랫동안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이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만, 헤어지는 것은 드문 일이었기에 떠나는 아이들과 나의 작별 인사는 어색하기만 했다. 그래도 담담히 마지막 수업을 하고, 아이들을 보냈다. 몇몇 아이들은 편지를 남기고 갔는데 그 편지는 지친 나에게 참 좋은 선물이 되었다. 학원의 학년 말과 학기 초에는 바쁜 일상에 어쩐지 마음까지 어수선해진다. 내 수업을 돌아보며 평가받는 시기인 것 같아 야릇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 친구들의 편지는 쫓기는 내 마음을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한 친구가 편지에 이렇게 썼다.


선생님 덕분에 공군 시 쓰기 대회에서 상도 받아보고, 글도 길게 잘 쓰게 되었어요.(...)

또 선생님 덕분에 제가 “국어”라는 과목을 정말 좋아하게 되었어요!라고.


‘덕분에’가 이렇게 듣기 좋은 말이었나. 아무 힘없는 나의 말끝을 조용히 따라와 준 녀석들에게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데 내 덕분이라 말해주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애써 편지지를 고르고 어떤 말로 시작할까, 어떤 말을 이어갈까 고민하는 순간의 마음이 전해졌다. 아이들의 편지 끝엔 울림이 더 컸다. 같은 연필로 꾹꾹 눌러쓴 글자인데도 그 마음 깊이만큼 진하기도 천지차이다. 그렇게 올망졸망한 글씨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모여 놀기도 한다.


그날의 편지는 함께 받은 다른 선물에 비할 것이 못 되었다. 어떤 것보다 기분 좋은 선물이었다. 내 이름을 불러주어 좋았고, 힘든 마음을 녹여주어 좋았고, 내 덕분이라 말해주어 고마웠다. 목청껏 설명해도 들은 체도 않는 꼬맹이 녀석들도 언젠가는 앞선 언니 오빠 누나들 같아지면 좋겠다는 기대를 주는 선물이었다. 장난기 가득한 저 녀석들의 글 속에도 보물 같은 씨앗이 분명 감춰져 있을 테니, 그날의 선물에 힘을 얻어 내 마음을 아이들에게 비추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냥 그날의 선물에 고마운 마음을 기억해두고 싶었는데, 시일이 지나고 다시 옮기려니 괜히 낯간지러운 말만 늘어놓게 된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아이들의 빛나는 마음을 놓치지 않고 잘 데리고 놀아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해 주어 고마웠더라는 것이다. 선물은, 아니 손끝의 온기는 이렇게 마음에까지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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