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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Nov 01. 2022

엄마, 우리 엄마

늘 고마운 엄마



내가 지금 딸아이의 나이쯤이었을 때다.

딩동. 엄마, 나 왔어! 어? 이상하다. 초인종 한 번에 냉큼 문을 열어줘야 하는데 아무 기척도 없다. 딩동 딩동 딩동. 여러 차례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문까지 두드렸는데 엄마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눈물이 나고 서러워졌다. 엄마는 늘 집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단 하루, 엄마가 하교한 나를 맞아주지 못했던 기억이 앙금처럼 남았다. 지금처럼 도어록도 없었고 엄마는 당연히 늘 집에 있었으니 열쇠 같은 것 가지고 다니지도 않았었다. 2층짜리 연립주택에 살 때였는데 내가 쾅쾅대며 현관문 두드리던 소리와 울음이 어찌나 크던지 앞집 살던 아줌마 아저씨가 나오셔서 엄마 오실 때까지만 우리 집에 들어가 있자 했음에도 끝까지 집 앞 계단에 앉아 고집을 피우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리고 돌아온 엄마를 향해 볼멘소리를 하며 얼마나 들들 볶았는지. 어른이 되어 생각하니 나도 참 너무 어리고 철이 없던 아이였다.



수업 중인데 전화가 온다. “엄마~~ 아빠가 전화를 안 받아~~ 엉엉.” 딸아이는 하교 후에 30-40분 남짓 혼자 놀다가 학원에 가야 하는 스케줄이다. 밖에서 친구와 놀거나 혹은 집에 혼자 있다 가는데, 1층에 사니 혼자서는 바깥사람들의 발소리가 무서운지 종종 아빠와 통화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그 아빠가 전화를 안 받는다는 것이다. 신랑은 배송업무를 하고 있어 아주 잠깐 전화를  못 받을 때가 있는데 하필. 아이는 그 적막에 수업 중인 엄마는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까지 제 전화번호부에 있는 온갖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린다.

그래, 그날 나도 그랬지. 그 엄마의 그 딸이구나. 이제야 엄마의 마음을 알겠다. 하루 종일 아이만 바라보고 있을 수 없을뿐더러, 아주 잠깐 어쩌다 한번 짬을 내어 볼일을 보러 갔을 텐데, 엄마도 내가 하교할 시간이 다 되어가는 걸 알고 조마조마 했을 텐데. 그때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아니 나밖에 몰랐다.




*

엄마는 내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셨다. 덕분에 말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꽉꽉 채워진 책을 친구 삼아 즐겁게 컸다. 딱히 공부하라며 스트레스를 주지도 않으셨고 알아서 잘할 거라고 믿어주셨다(고 믿고 싶다). 그런데도 잘 안되면 남 탓을 한다고 괜히 엄마 탓을 할 때도 있었다. 아니 조금 아쉬웠던 거라고 해두자. 엄마가 조금만 더 길을 제시해줬으면, 조금만 더 간섭을 하고 잔소리를 해줬다면 내 길이 또 달라지진 않았을까 하는.

결혼 전부터 나는 계속 교육 관련 일을 하며 지냈다. 보고 듣는 것이 많았기에 친구들은 물론 나조차도 나는 극성스러운 엄마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가 되어보니 달랐다. 내 마음과 아이 마음이 달랐고, 남편과 상의해서 해야 하는 일도 많았다. 엄마가 되어 엄마의 마음을 안다. 사실은 나를 많이 배려해주었고 엄마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엄마는 내가 언제 돌아와도 집에서 반겨줄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고, 답답해서 울고 싶을 때에도 괜히 투정 부릴 수 있는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다. 아이를 낳고 여러 일이 겹쳐 길고 긴 우울과 쇠약한 몸을 추스르면서 더 감사할 일이 많았다. 우리 삼 남매를 키우며 지내다 다시 바깥일을 시작하실 무렵  나는 엄마를 ‘자유부인’이라 불렀다. 그런데 나의 출산 후 엄마는 자유를 잃은 ‘친정엄마’가 되었다. 주말 없이 우리 집에 오셔서 아이를 봐주고 집안일도 거들어 주셨다. 언제 그 감사함을 다 갚지 하는데, 여전히 엄마에게 기댄 마음을 곧 들킬 철없는 아줌마다.


엄마가 되고 엄마의 자리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 지를 알게 됐다. 여전히 엄마 노릇을 하기에 한없이 모자라고 나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엄마이지만, 종종 엄마가 먼저 걸어주는 안부 전화를 받을 줄만 아는 딸이지만… 그래도 엄마가 그랬듯 나도 좀 더 좋은 엄마로, 딸로 하루하루를 감사히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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