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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Nov 03. 2022

나는 왜 다정하게 말하지 못할까

못난 내 모습도 나인 것은 맞지만..




야아~ 그렇게 말하면 내가 속상하잖아. 뭐! 네가 먼저 나한테 화내면서 말했잖아. 내가 언제!

학원에서 만나는 꼬맹이들의 대화다. 벌써 3주 전에 약속해 둔 한국사 게임을 함께 한다고 좋아하던 것도 잠시, 괜한 트집을 잡고 언성이 높아진다. 가만 귀 기울여 들어보면 아무도 화내지 않았고, 짜증 낸 적도 없는데 문제는 말투였다. 물론 경상도 지역 특유의 억양이 한몫했겠지만, 저렇게 오해가 쌓여 싸움이 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싶어 할 수 없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조곤조곤, 상대가 잘 알아들을 수 있게 예쁜 목소리로 해 달라고. 너희는 그냥 평소와 똑같이 했다고 하는 말도 다른 친구가 듣기에 오해가 있을 수 있으니까 귀찮아도 늘, 내가 들어서 속상할 것 같은 말과 그런 말투로는 이야기하지 말자면서. 그러니 아이들의 목소리도 잦아들고, 여기저기서 ‘미안’하는 말이 들려왔다.


하아. 그런데 나는 왜 안 될까? 사실 다정하게 말하지 못하는 걸로는 1등을 할 사람이 바로 나다. 언젠가 나는 왜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소홀한 걸까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지만, 마음을 내어주면서도 다정하지 못한 말투로 오해와 핀잔을 산 적도 많았던 것 같다. 밖에서는 한 없이 다정하고 좋은 사람 같다. 퉁명스럽게 이야기하다가도 전화가 걸려오면 다른 사람이 된다. 십여 년을 길러온 직업병이라면 그럴 테지만 요즘은 그것도 시들하다. 내 말 한마디에 자존감이 꺾일 아이들이 여럿일 텐데 가끔 밖에서도, 집안에서는 자주 말이 화살이 되어 고개를 내민다.


어젯밤 동생 내외가 집에 놀러 왔다. 기분 좋게 저녁을 먹고 맥주도 한 잔 하고, 아이도 덩달아 기분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다가 일이 났다. 아이가 테이블 위로 넘어진 것이다. 물론 다치지 않았냐, 괜찮냐 먼저 물었다. 다행히 아이는 멀쩡했고 화는 엉뚱한 데서 꿈틀거렸다. 바닥에 뒤범벅된 접시와 소스, 내가 아끼는 잔이 깨어진 걸 보니 짜증이 치솟았다. 내뱉아서는 안 되는 말을 하며 아이를 혼냈고, 아이는 어쩔 줄 몰라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동생은 아이를 안아주며 토닥였고, 지랄 맞은 내 성격을 아는 지라 그러게 왜...라는 말도 빼놓지 않고 아이에게 덧붙여주었다.


내뱉은 말과 행동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렇기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다정한 말을 내밀면 다시 다정한 말로 되돌아온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런데 왜! 나는 다정하게 말하지 못하는 걸까.


어젯밤 그 일 이후, 아빠와 자겠다는 아이를 불러다 안아주면서 조용히 말했다. 엄마가 미안하다고. 너도 놀라고 속상했을 텐데 엄마 생각만 하고 화를 내서 미안하다며 꼭 안아주었다. 그랬더니 조금 전까지도 엄마 눈치를 보던 아이는 괜찮아하곤 내게 볼뽀뽀를 해주고 아빠를 향해 갔다. 기분이 좀 누그러졌을까? 다시 온갖 인형과 베개를 가지고 내게 쪼르르 달려와 옆에 눕는다.

잠든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언제나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은 나다. 다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상황에도 내 속을 엉뚱하게 드러내는 내가 문제다. 어디선가 억눌렸던 마음이 괜히 집안에서 엉뚱하게 발현되는 건 아닐까 걱정하면서, 뭐든 그 상황에 맞게 제대로 나를 표현하며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것도 내가 아닌 나는 없지만, 상처보다는 웃음을 줄 수 있는 다정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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